[데스크시각-이용웅] 의사와 의사 선생님 기사의 사진

의사는 한자로 스승 사(師)자를 쓴다. 같은 사자 돌림인 판사나 변호사와도 다르다. 그래서인지 의사를 호칭할 때에도 의사님이 아니라 의사선생님이라고 한다. 스승만큼 존경한다는 의미다. 그런데 여기저기서 들리는 의사들의 부도덕한 행위를 보면 선생님이라는 말을 듣기가 여간 민망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히포크라테스의 정신을 이어받아 사랑의 의술을 펼치고 있는 훌륭한 의사들에겐 죄송한 얘기지만 미꾸라지 한 마리가 개천의 물을 흐리게 하듯 부도덕한 의사들이 사라지지 않는 한 도매금으로 취급되는 억울함을 피할 수 없을 것 같다.

1973년 제정된 모자보건법에는 강간이나 근친상간에 의한 임신, 산모에게 전염성 질환이 있을 경우 등 다섯 가지 사안에 대해서만 낙태를 허용하고 있다. 그러나 낙태반대 운동을 펼치고 있는 프로라이프 의사회가 밝힌 산부인과 의사들의 불법 낙태 수법을 보면 가히 충격적이다.

서울의 한 산부인과에서는 임신기간에 관계없이 낙태를 일삼고 임신인지 아닌지 확진을 받으러 온 임부에게 낙태수술을 했다. 오직 돈을 벌기 위해 임신하지도 않은 여성의 멀쩡한 자궁을 긁어냈다고 하니 말이 안 나올 지경이다. 또 감기약을 먹어 태아에 이상이 있는지 없는지를 확인하러 온 임부에게 감기약의 성분도 확인하지 않은 채 낙태수술부터 한 산부인과 원장도 있었다. 이 원장은 낙태를 하지 않으면 기형아 출산 위험이 있다며 겁을 줬다고 한다. 참말로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산부인과 의사들의 불법 낙태 수법은 입에 담지 못할 만큼 잔인하고 많다.

보건복지가족부의 2005년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낙태는 한 해 34만여건이 이뤄지고 그 가운데 96%가량이 불법이란다. 우리나라 15∼44세 여성의 연간 낙태율은 1000명당 평균 29.8명으로 법적으로 우리보다 훨씬 쉽게 낙태를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 미국(21.1명)이나 영국(17.8명)보다 더 많다. 프로라이프 의사회는 사회에 만연되어 있는 불법 낙태를 막기 위해 동료 의사를 검찰에 고발까지 했다.

이달 들어 복지부가 피임·성교육을 강화하고 불법 낙태 신고센터를 만들기로 하는 등 불법 낙태 방지를 위한 종합 대책을 내놓았다. 그러나 알맹이 없고 현실성도 떨어지는 쭉정이 대책에 불과하다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프로라이프 의사회의 낙태 반대 운동에 대해서도 문제 제기가 잇따르고 있다. 한국성폭력상담소 등 20여개 여성·시민단체들은 지난 6일 “임신·출산·낙태 등 여성의 몸에 대한 결정권은 여성 자신에게 있다”며 낙태 고발 및 단속을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 프로라이프 의사회의 낙태 병원 고발에 대해서는 “여성을 자신의 몸에 대한 통제권 및 재생산권의 주체로 존중하지 않고 자율권을 통제하려는 반인권적 발상”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런 저런 현실을 감안할 때 이들의 주장이 전혀 설득력 없어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산부인과 의사들이 오직 돈벌이를 위해 낙태를 일삼고 부추기는 일은 곤란하다.

어쩌다 보니 낙태 얘기가 너무 길어졌지만 의사들의 부도덕한 행위는 불법 낙태뿐이 아니다. 병원을 차렸다가 진료비 허위 청구나 부당 청구로 돈만 챙긴 뒤 보건 당국의 적발을 피하기 위해 문을 닫는 의사들도 부지기수다. 복지부에 따르면 2005년부터 2009년 사이에 세 번 이상 병원을 개업했다가 폐업한 의사가 무려 1142명에 달했다. 그 가운데 6회 이상 개·폐업한 의사도 66명이나 되는 등 상당수는 진료비를 허위 청구한 뒤 문을 닫은 것으로 복지부는 내다보고 있다. 그리고 아예 면허를 대여하는 의사도 많다. 인간의 생명을 다루는 의사들의 직업윤리가 이 정도라니 정말 안타깝다.

‘이제 의업에 종사할 허락을 받음에, 나의 생애를 인류 봉사에 바칠 것을 엄숙히 서약하노라.’ ‘나는 인간의 생명을 그 수태된 때로부터 지상의 것으로 존중히 여기겠노라.’ 의사들은 의사가 되기 전에 하는 이 같은 맹세를 다시 한번 되새겨 실천해야 한다.

이용웅 생활과학부장 yw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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