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용 칼럼] 로버트 朴의 북한 인권행진(2) 기사의 사진

“그는 순교적 사명을 다했다. 훗날 뭘 했나 물을 때 정치권은 뭐라고 답할 건가”

북한 억류 43일 만에 풀려난 재미교포 로버트 박 선교사가 한 달 전 베이징 서우두 공항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 TV를 본 사람들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북한 정치범 수용소 폐쇄와 김정일 위원장의 퇴진을 요구하며 두만강을 건너던 기개는 어디 가고, 풀 죽은 얼굴에 눈을 떨군 채 기자들의 질문공세에 한 마디 언급도 없이 황급히 비행기에 올랐기 때문이다.

북한은 “로버트 박이 석방 직전 ‘북한이 나의 인권을 보호해줬다. 서방의 그릇된 선전에 속았다’고 기자회견에서 밝혔다”고 주장했다. 사람들은 그가 진실을 폭로해줄 것을 기대했던 만큼 실망도 컸다.

그가 한 달 만에 입을 열었다. 그의 활동을 지원해 온 팍스코리아나 조성래 대표와의 통화에서 “그들은 나를 연속적으로 고문(torture)했고, 마침내 나를 정복했다(destroyed)고 판단하자 석방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또 “나를 혼미하게 한 상태에서 벗기고 터치(touch)했다”고 했다. 여성 5∼6명을 동원한 성고문까지 당했다고 다. 순교하고 싶었지만 여의치 않아 풀려나자마자 자살을 생각했다고 고백했다.

국경수비대는 그를 총기로 초주검이 되도록 때렸으며, 입을 벌릴 수도 없게 되자 호스로 음식을 밀어 넣었다고 한다. 북한의 ‘기자회견’이 고문과 회유에 의한 날조였음을 폭로한 것이다. 19년 전 북한에서 고문을 당했던 목사는 “그런 고문을 겪고 나면 대개 1년 이내에 자살하고 만다”고 말한다.

박씨는 미국에서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PTSD)로 부모와 지인들에 의해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했다가 최근 나왔다. 정신은 말짱하지만 대화할 때마다 호흡이 격해져 의사소통이 어렵고, 수시로 화가 솟구쳐 사람들 만나기를 두려워했다. ‘작은 예수’로 불리던 순수한 29세 청년은 이렇게 망가져버렸다.

하지만 유례없는 로버트 박의 자진 입북은 결코 헛된 사건이 아니라고 믿는다. 그는 자기 생명을 스스로 위험 속에 몰아넣고, 북한 주민들을 위해 버리려고 했다. 그는 지금 겪는 고통을 통해 순교자로서의 사명을 완수한 것이다.

로버트 박 의거(義擧)에 크게 당황한 북한의 대응이 그 한 가지다. 북한은 그의 입북 직후 남조선의 40대 정신이상자도 두만강을 건너왔다고 발표했다. 대북 인권단체는 북한이 로버트 박을 함께 정신이상자로 몰기 위해 남한에 있던 고정간첩을 귀환시킨 ‘기획 입북’이라고 장담한다. 최근 북한이 억류한 ‘불법입국 남조선 주민 4명’도 현재로서는 기획 입북 소지가 농후하다.

이제부터 중요한 건 우리 정부와 정치권의 역할이다. 북한 주민들의 생활과 인권은 최악의 상태다. 탈북 여성들은 중국 땅에서 우리 돈 100만원에 노비처럼 팔려 다니고 있다. 미국은 2004년, 일본은 2006년에 북한인권법을 만들었다. 우리나라에서는 2005년 상정된 북한인권법안이 지난달 국회 외통위를 통과한 뒤 여태 법사위에 계류 중이다. ‘남북관계의 특수성’을 내세우며 북한을 자극하지 말라는 민주당과 진보단체들의 반대에 여당조차 편승해 미적거리고 있다.

과거 서독 정치권은 좌우를 막론하고 동독과 대화할 때마다 인권 문제를 거론했다. 서독은 통일 전 동독 접경의 잘츠기터시에 인권기록보존소를 설치, 동독내 반인권적 정치적 폭력행위를 국제 무대에서 끊임없이 제기함으로써 인권침해를 억제하는 효과를 거뒀다. 남북통일의 목표 가운데 하나도 북한 동포의 억압적인 인권 유린을 개선하기 위한 것 아닌가. 북한 인권 문제에 접근할 때 체제 전복 차원의 공세가 아니라, 북한 주민의 인권과 자유를 위함이라고 설득하는 것이 필요하다.

인권운동가 수전 숄티는 “훗날 역사는 북한 주민들이 고통 받을 때 한국은 무엇을 했는지 물을 것”이라고 했다. 난공불락의 여리고성도 일곱 바퀴를 돌았을 때 무너졌다. 로버트 박의 북한 인권행진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그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정치권이 계승해야 할 차례다.

이형용 수석논설위원 hy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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