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처 인사이드-이광형] ‘추노’는 현실이다 기사의 사진

도망간 노비를 쫓는 추노꾼의 사연을 그린 KBS 2TV 수목드라마 ‘추노’가 장안의 화제다. 쫓고 쫓기는 액션이 긴박하게 전개되고, 한 여자를 사이에 둔 두 남자의 러브스토리가 절절하다.

또 양반과 노비의 신분 차이에 따른 갈등과 최고 권력을 두고 벌이는 암투가 사실적이다. 이 드라마가 인기를 끄는 이유는 조선시대나 지금이나 별로 다를 것 없는 현실에 바탕을 두었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다면 ‘추노’의 내용은 사실인가 허구인가.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반쯤은 사실이고 반쯤은 허구다.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자료센터는 최근 홈페이지(www.kostma.net)에 ‘추노, 그 이야기 속의 사실과 허구’라는 코너를 만들어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풀어주고 있다.

드라마처럼 추노꾼은 존재했을까. 조선시대 도망간 공노비는 국가가 ‘추쇄도감’(推刷都監)을 설치해 찾았지만 사노비는 개인 소유주가 직접 해결해야 했다. 도망친 노비의 소재를 파악하는 일은 다른 노비에게 시켰지만 노비를 잡아오는 일은 관청에 기대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1427년(세종 9) 경기도 양주에 살았던 장전의 부인 신씨는 도망간 계집종이 경상도 순흥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낸 뒤 경상도 관찰사에게 자신의 노비를 잡아달라는 내용의 청원문서를 올렸다. 관청은 노비를 잡는 일에 외부 인력, 이른바 추노꾼을 동원하기도 했다.

노비의 인생역전은 가능했을까. ‘영조실록’(1745년 5월 26일자)에 따르면 영조는 엄택주라는 인물에 대해 크게 노한 나머지 전라 흑산도로 유배시키고 과거 합격 기록을 삭제하라는 명을 내린다. 엄택주는 본명이 이만강이고 관청의 노비였으나 신분을 감추고 1719년(숙종 45) 사마시에 합격했으며 1725년(영조 1)에는 문과에 합격했다. 급제 후 현감 등을 지내다 벼슬을 그만뒀지만 결국 원래 신분이 드러났다. 그의 인생역전은 물거품으로 돌아간 것이다.

드라마가 암시하는 것처럼 소현세자는 독살됐는가. 소현세자는 병자호란 때 청나라에 인질로 끌려갔다가 1645년(인조 23) 귀환했다. 당시 인조는 청나라가 자신을 폐하고 소현세자를 왕위에 올릴까 두려워했다. ‘인조실록’에는 소현세자가 한양에 도착한 지 얼마 후 학질이 위중해져 사망했다고 적혀 있지만 인조가 세자에게 침을 놓은 이형익을 처벌하지 않고 세자의 장례를 서둘러 치른 점 등이 독살설에 무게를 두는 근거다.

드라마는 소현세자의 아들, 즉 세손의 복권을 도모하는 측과 이를 저지하려는 측의 싸움으로 긴장감을 더한다. 소현세자가 죽고 세자빈 강씨는 사약을 받은 후 세 아들은 모두 제주도에 유배됐다. 1648년(인조 26) 9월과 11월 당시 13세와 9세이던 석철과 석린이 잇따라 죽고 5세이던 석견만 살아남았다. 석견은 유배지를 옮겨가며 오랜 귀양살이를 하다 1656년(효종 7)에야 풀려난 후 경안군으로 봉해졌다.

드라마를 더욱 재미있게 하는 것은 이런 역사적인 사실 외에도 ‘현대판 추노’의 존재를 은근히 빗대고 있다는 점이다. 자본주의 시대에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관계는 조선시대 양반과 노비의 관계와 다름없고, 권력을 두고 벌이는 추악한 싸움은 여의도 정치판의 그것과 유사하다. 노동자의 눈물은 외면한 채 돈벌이에만 혈안인 기업인, 서민들의 고충은 헤아리지 않고 권력에만 집착하는 정치인 역시 추노꾼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TV를 별로 시청하지 않는다. 시청률 조사기관인 AGB닐슨미디어리서치가 분석한 ‘추노’ 소득계층별 시청률(1월 6일∼3월 4일)에 따르면 월 119만원 이하층이 14.8%로 가장 높고 500만원 이상층은 10.4%로 가장 낮았다. 직업별로는 농수축임업이 26.5%, 전문경영관리는 12.0%로 대조적이다.

높으신 분들이 ‘추노’를 본다면 “너희들이 아무리 발버둥쳐도 세상은 절대로 바뀌지 않는다”는 주인공의 대사만 귀에 들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세상은 낮은 자들의 몸짓을 매개로 결국엔 변화하고 말 터이다.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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