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곤 칼럼] ‘정치논리’는 나쁜 것인가 기사의 사진

“어려운 시기에 왜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됐을까 생각해보면 굽어진 것을 바로 펴고, 잘못된 것은 바로잡고, 그래서 다음 대통령부터 대한민국이 승승장구할 수 있는 그런 나라를 만들라고 나를 대통령을 시켰지 않는가 생각한다. 인기에 영합하고 정치논리에 휩쓸리고 이렇게 대통령직을 수행하라는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10일 대전·충남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한 말이라고 한다. 사사로운 이익이나 인기를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나라와 국민을 위해 대통령직을 수행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을 것이다. 두말할 나위가 없다. 바로 이것이 이 대통령뿐 아니라 모든 대통령의 책무다.

다만 ‘인기’ ‘정치논리’라는 표현이 왜 이처럼 부정적 의미를 가진 용어의 표본인 양 쓰이게 되었는지, 그 점이 좀 유감스럽다. 민주정치란 국민이 주인인 정치, 민의를 최고의 가치 및 명령으로 삼는 정치를 말한다. 그런 정치라면 당연히 인기가 따를 것이다. 그런데 ‘인기’가 언제부터인가 금기어 비슷한 뉘앙스를 풍기게 되었다.

‘정치’라는 용어의 신세도 처량하기는 마찬가지다. 정치는 국민을 잘살게 하자고 있는 것이다. 정치논리란 당연히 정치를 잘하기 위한 방법론이거나 가치론일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악을 담고 있는 그릇이기나 한 양 백안시되고 있다.

대중적 인기를 외면한다면

물론 대중의 인기는 변덕스럽기 이를 데 없고 많은 경우 감정이나 이기주의를 반영하기도 한다. 따라서 인기에 너무 연연하면 대의를 잃기 쉽다. 그 점에서 보면 인기영합은 위험한 태도일 수가 있다. 그렇지만 대중의 인기를 잃으면 리더십을 발휘하기가 아주 어렵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고난이 바로 그 때문이었다. 이 대통령 또한 임기 첫 해에 그 고통을 아마 뼈저리게 느꼈을 것이다.

정치논리라는 것도 정파적 이익을 우선하는 집단이기주의적 논리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가진 게 사실이긴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논리가 배제되면 대의민주정치가 제대로 작동할 수 없다. 정치논리란 양보와 타협을 속성의 일부로 한다. 양보와 타협이 전제되지 않으면 정치는 한 치도 진전되기 어렵다.

대의민주정치는 유격(裕隔)의 정치, 완충의 정치라는 측면을 갖는다. 정당과 대의기관들이 그 역할을 한다. 사회적 갈등 요인을 대화와 타협의 과정에 이끌어 넣어서 이를 완화하고 조화시키는 것이야말로 정당과 국회의 중핵적 기능 가운데 하나다. 우리의 정당이나 국회는 오히려 갈등을 조장하고 부풀리는 것을 주업으로 삼고 있는 인상을 주고 있어 탈이지만 어쨌든 이치로는 그렇다.

그러므로 이 대통령은 오히려 국민의 인기를 얻을 수 있는 리더십, 정치논리를 반영할 수 있는 국정운영의 방안을 진지하게 찾을 일이다. “인기는 필요 없다! 정치와는 거리를 두겠다!”는 선언은 대중정치에 대한 선전포고나 다름없다. 대중을 떠난 대통령, 정치를 외면하는 대통령은 독선과 독단의 껍질 속에 갇히기 십상이다.

이 대통령이 그런 뜻으로 한 말은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걱정스러운 점이 아주 없지는 않기 때문에 원론을 상기시키려는 것이다.

타협도 리더의 소중한 덕목

이 대통령의 리더십과 관련해서 그간 안 좋은 쪽으로 가장 많이 지적되었던 것이 ‘소통의 부재’였다. 이는 독선과 독주의 다른 이름이다. 이 대통령의 생각과 정책은 진리의 표현이 아니다. 국가 정책, 국정 방향 및 운영 방식 등은 이 대통령과 정부 관계자들의 양식과 지식과 경험과 가치관에 따른 선택의 결과일 뿐이다. 당연히 소통을 통한 개선 혹은 타협의 여지를 남겨두어야 옳다.

다른 정치 리더들의 성향도 별로 달라 보이지 않는다. 대통령에게 변화를 요구하면서 자신들의 주장은 절대로 거둬들일 수 없다는 것 또한 독선이다. 정치 리더들의 이런 자세야말로 우리의 대의민주정을 위기로 몰아넣는 결정적 요인이 아닐까? 리더 각자의 신념보다 더 중요한 것은 대의(大義)를 위한 양보와 타협이다. 이런 정신이 대의민주정을 성공시키는 바탕이 되고 버팀목이 된다는 것을 유념하시라.

이진곤 논설고문 jing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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