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박정태] 허위 인권의식을 버리자 기사의 사진

꽃도 피우지 못하고 작은 꽃송이가 꺾였다. 무참하게 짓밟혔다. 소녀는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왔다. 그 열세 살 소녀의 영결식. 하늘에선 부슬비가 내렸다. 오열, 울분, 허탈, 그리고 국민적 공분….

무서운 세상이다. 성야수(性野獸)가 먹잇감을 노리며 활개치는 세상. 맘 놓고 딸을 키우지 못하는 세상. 범인은 잡혔지만 그 인면수심의 극악무도함에 몸서리가 쳐진다.

2006년 2월 용산 미연(11)양, 2007년 3월 제주 지승(9)양, 같은 해 12월 안양 예슬(8) 혜진(10)양 성추행 살해사건에 이어 2008년 12월 여덟 살 ‘나영이’를 성폭행해 영구장애를 입힌 ‘조두순 사건’…. 최근 몇 년 사이 경악을 금치 못하게 한 아동 대상 성범죄다. 그런데 또다시 어린 생명을 처참하게 앗아간 흉악범죄가 발생했으니. 그 책임은 어느 한 군데에 있지 않다. 치안 당국의 책임, 정치권의 책임, 정부 당국의 책임, 그리고 어른들의 책임이다.

국회는 공범이나 다름없다. 조두순 사건 이후 발의된 성범죄 관련 법안이 20여건이다. 그 중 국회를 통과한 건 하나뿐이다. 사회적 이슈가 발생해 비판여론이 고조되면 호들갑을 떨다가 시간이 지나면 흐지부지된다. 지난해 하반기엔 ‘세종시 정쟁’으로 세월을 보냈다. 이달 안에 관련법을 처리한다지만 알 수 없다. 법안을 둘러싸고 정치권 내 시각 차가 있는 데다 전국동시지방선거마저 코앞에 다가왔으니 여론이 수그러들면 어물쩍 넘어갈지도 모르겠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전자발찌법 소급 적용에 대해 말들이 많다. 현행법상 전자발찌가 2008년 9월 이전 기소된 성범죄자에겐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반대론자들은 형벌불소급 원칙, 신체의 자유 침해라며 위헌 주장을 편다. 그러나 지금은 법리만을 앞세울 때가 아니다. 지난해 성폭행 피해 아동(12세 이하)은 1017건으로 하루 3명꼴이다. 오늘 이 순간에도 범죄가 발생한다. 재범률도 높다. 특히 아동성범죄자 재범률은 50%를 넘는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700만 아동의 부모들은 1년 365일 내내 전전긍긍하며 살아야 한다는 말인가. 재범률이 0.19%에 불과할 정도로 범죄 예방에 효과적인 전자발찌는 사회 방어를 위한 사후 관리 차원으로 인식하고 과거 범죄자에게도 적용되는 게 마땅하다.

성범죄자 신상공개도 실질적으로 확대돼야 한다. 올해부터 시행 중인 보건복지가족부 ‘성범죄자 알림e’는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 공개 대상자가 단 한 명도 없다. 올 1월 1일 이후 성범죄를 저지른 자만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본보가 지난해 이 사이트의 범죄 예방 효과가 없음을 지적(11월 24일자 1, 6면)했지만 마이동풍이었다. 현재 경찰서에서 운영하는 성범죄자 정보 열람제도와 통합·확대해 우리 동네 어디에 야수들이 거주하는지 한눈에 알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자동차 운전 시 내비게이션은 사고다발지역을 경고해준다. 이처럼 우리 주변 우범지대를 정확히 알려주는 게 정부의 책무다.

‘화학적 거세 요법’도 전향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화학적 호르몬 주입을 통해 성적 욕구를 감소시키는 이 약물요법은 다수의 선진국에서 시행하고 있다. 인권침해 논란이 거세지만 피해자와 가족들의 삶을 황폐화시킨 야수들이다. 성범죄는 절도나 강도 등과는 차원이 다르다. 영혼을 파괴하는 반인륜적·반사회적 흉악범죄다. 관타나모 수용소와 같은 걸 무인도에 세워서라도 야수들은 사회와 영원히 격리시켜야 한다. 성공한 쿠데타도 단죄한 ‘5·18 특별법’처럼 특단의 법을 제정해서라도, 소급 논란에 종지부를 찍기 위한 국민투표를 해서라도 국민의 안녕이 지켜져야 한다.

동등한 인권 보장 운운하며 야수들이 또 다른 범행을 저지를 때까지 기다릴 수는 없다. 총체적 대책 마련과 함께 근원적 처방을 하자. 현실과 동떨어진 허위 인권의식은 버리자. 그리고 우리 사회와 어른들이 책임을 통감하자. 미안하다, 우리들의 딸 유리야.

박정태 특집기획부장 jtpar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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