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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종 칼럼] 지자체장들의 MB 콤플렉스

[백화종 칼럼] 지자체장들의 MB 콤플렉스 기사의 사진

1990년 김대중 평민당 총재는 지방자치제의 전면 실시를 요구하며 단식에 돌입했다. 김 총재가 단식까지 하며 지자제 실시를 요구한 것은 물론 풀뿌리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 때문이었겠지만 지방분권이 야당인 자신의 집권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계산도 깔려 있었다.

집권 민자당은 지자제가 시기상조라고 맞섰으나 여론은 지자제 실시 쪽으로 흘렀다. 이때 여권의 핵심 인사는 기자에게 “지자제를 하면 나라가 거덜 나고 안 하면 민자당이 망하게 생겼다. 지자제를 하는 수밖에 다른 길이 없다”고 푸념했다.

이렇게 해서 지방의회가 구성된 지 19년, 지자체장들이 선출돼 완전한 지자제가 부활된 지 15년이 됐지만 그 인사의 말대로 나라가 거덜 난 것 같진 않다. 오히려 주민에 대한 서비스가 향상되는 등 점차 뿌리를 내리고 자리를 잡아가는 느낌이다.

그러나 잦은 선거에 따른 비용과 주민들 간의 갈등, 지방의원이나 단체장들의 토착 비리 등 그 인사가 지적했던 부작용들이 사라지지 않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 중에서도 기자가, 아니 많은 사람들이 가장 못마땅하게 여기는 폐단은 단체장들의 헤픈 돈 쓰기가 아닐까 싶다. 비근한 예로 기자가 자주 오르는 남산만 해도 무슨 공사가 그리 많은지 모르겠다. 기자가 보기엔 멀쩡한 화장실, 산책로, 펜스 등을 하도 자주 뜯어고치는 바람에 남산이 몸살을 앓는 것 같다. 각 시·군 단위의 지자체들이 수천억원씩 들여 청사를 짓는 것은 대통령까지 문제를 거론한 사안이다. 시골에 가 보면 그냥 다녀도 불편 없을 것 같은 도로를 놔두고 새 도로를 내는가 하면, 이용할 사람들도 없는 체육관을 면 단위로 세우기도 한다. 그뿐인가. 우리나라에서 1년 동안에 열리는 지역축제가 1100개가 넘는데 그중 특색 있고 적자가 나지 않는 것은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고 한다.

“네 돈이면 그렇게 쓰겠냐”

물론 새로 짓고 고치면 더 편리하고, 경우에 따라선 경제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문제는 투자 대 효과라는 경제성이다. 조금 더 편리하게 하자고 그만한 돈을 들일 가치가 있는지를 따져보자는 것이다. 기자는 가난하게 자란 세대가 돼서 그런지 이런 공사들에 낭비적 요소가 너무 많다는 생각이다.

우리나라 지자체들의 재정자립도는 평균 53%이며, 자체 수입으론 소속 공무원들의 봉급도 못 주는 지자체들이 수두룩하다고 한다. 이런 실정에서 국고보조를 받거나 빚을 내 잔치를 하고 허세를 부리는 게 가당한 일인가.

다른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업적을 과시하고 싶은 건 인지상정이다. 특히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아야 하는 정치적인 인물들이야 더 말해 무엇 하겠는가. 빚이라도 내서 돈만 끌어댈 수 있다면 없는 강이라도 만들어 그 위에 다리를 놓고 그걸 업적으로 내세우고 싶은 게 위정자들의 일반적인 속성이다. 여기에다 토목공사 등 업자들의 부추김도 한몫한다는 게 정설이다.

이 같은 위정자들의 일반적 속성에다 기름을 부은 게 이명박 대통령이다. 청계천 복원의 성공 신화가 지자체장들을 후끈 달게 만든 것이다. 나도 한 건만 잘하면 대통령도 되고 저 높이 뜰 수 있다는 환상에 사로잡혀 엉뚱한 낭비를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다. 이 대통령을 뛰어넘어보자는 일종의 MB 콤플렉스에 빠져 있는 것이다.

돈 쓸 줄 아는 사람을 뽑자

단체장들이 주민들을 위해서 아이디어를 내는 건 바람직한 일이다. 다만 누구나 MB가 되고 청계천 신화를 만들 수 있는 건 아니다. 지자체의 살림을 맡은 사람이라면 국민 세금 가지고 모험을 하기보다 주민에게 도움을 줄 실용적인 일을 하는 게 옳다.

이번 6·2 지방선거에서는 주민살림을 내 살림처럼 할, 무엇보다도 돈을 제대로 쓸 줄 아는 사람들을 단체장으로 뽑아야 하겠다. 그러기 위해 우리 단체장들이 내 세금을 헤프게 쓴 건 없는지 현미경을 가지고 들여다봐야겠다.

그리고 주민 살림을 맡은 자치단체장들은 “네 돈이라면 그렇게 쓰겠냐?”고 했다는 고 정주영 회장의 말을 깊이 새길 필요가 있겠다.

백화종 전무이사 wjbae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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