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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규홍의 식물이야기] 오래된 것이 아름답다

[고규홍의 식물이야기] 오래된 것이 아름답다 기사의 사진

나이 들면서 더 아름다워지는 생명체는 나무밖에 없지 싶다. 나무 가운데에도 은은한 향기를 가진 고졸한 멋의 매화는 더 그렇다. 옛 선비들이 매화를 이야기할 때마다 젊은 것보다 늙은 것이 더 아름답다고 한 것도 그래서일 게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매화는 경남 산청군 단성면 운리 단속사터의 나무다. 고려 말, 강회백(1357∼1402)이 어린 시절에 심은, 640살 된 늙은 매화다. 나무를 가꾼 강회백이 종2품 벼슬인 ‘정당문학’에 오른 뒤, 정당매(政堂梅)라는 이름을 붙였다.

탐매 여행 목록에 빼놓을 수 없이 훌륭한 나무이건만, 최근 건강이 급격히 나빠지는 바람에 볼품이 적어졌다. 따라서 찾는 이도 드물어진 것은 당연지사. 세월의 풍상에 찢기고 할퀸 자국을 줄기에 그대로 드러낸 안쓰러운 모습이다. 그래도 봄이면, 앙상하게 남은 몇 개의 가지에는 새하얀 매화 꽃이 간당간당 피어오른다.

정당매와 함께 경남 산청에는 ‘산청 삼매’라 부르는 세 그루의 오래 된 매화가 있다. 전통한옥마을로 유명한 남사마을의 고택 분양고가(汾陽古家)의 뜰에 서 있는 나무가 그 하나다. 이 집에 살던 원정공 하즙(1303∼1380) 선생이 심은 나무로, 600살을 훨씬 넘긴 고매(古梅)다.

곧게 뻗어오르다가 공중에서 휘감아돌며 뻗어오른 나뭇가지의 기상이 장한 나무인데, 안타깝게도 서너 해 전부터 꽃이 피지 않는다. 수명을 다한 것이다. 정당매와 마찬가지로 한창 때의 건강을 되찾기 어려운 상태다.

산청 삼매 가운데 여태껏 생명을 이어가는 다른 하나는 남명 조식 선생의 서재인 ‘산천재(山天齋)’ 앞마당에 서있는 매화다. 조식 선생의 아호를 따서 ‘남명매’라고 부르는 이 나무의 나이는 450살쯤 됐다. 은둔한 선비, 조식 선생의 기품을 닮아서인지, 음전하지만 당당하다.

젊은 것보다 늙은 것이 더 아름다운 게 매화라지만, 그들도 살아있는 생명체인 이상 세월에 실린 생로병사의 운명을 피해갈 수는 없다. 돌이키기 힘든 세월의 강을 건너와 말라 비틀어졌어도 매화이기에 그들은 여전히 젊은 나무들이 흉내내기 어려운 기품을 지니고 있다.

애면글면 생명의 끝자락을 쥐고 있는 나무의 줄기 깊은 곳에서 배어나오는 오래된 것의 아름다움은 속도의 시대에 짚어보아야 할 참 삶의 알갱이 아닐까 싶다. 유난히 늙은 매화만을 탐했던 옛 사람들의 지혜가 그래서 소중하게 다가온다.

천리포수목원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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