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이용훈] 브라이언 오서와 김연아의 금메달 기사의 사진

김연아 코치 브라이언 오서(49)를 캐나다 밴쿠버 시내에서 우연히 만난 건 지난달 24일 낮(현지시간)이었다. 김연아의 금메달 여부가 최종 결정될 프리스케이팅 연기(25일) 바로 전날이었다.



처음엔 오서가 맞는지 눈을 의심했다. 오서는 밴쿠버 번화가 가운데 하나인 버라드가에서 쇼핑백을 왼손에 든 채 안무가 데이비드 윌슨(44)과 함께 깔깔거리며 걷고 있었다. 언뜻 봐선 올림픽 구경 온 태평한 관광객 같았다. 김연아 숙소와 연습링크는 그곳과 차로 30분 이상 떨어져 있어서 ‘오서가 지금 여기 있을 사람이 아닌데’하는 생각이 스쳤다.

오서와 악수하고 몇 마디 얘기를 나누면서 궁금증이 풀렸다. 오서는 웃으면서 “시내로 쉬러 나왔다”고 했다. ‘내가 연아 옆에 몇 시간 더 있어준다고 달라질 것은 없다’는 뉘앙스였다. 김연아는 이날 오서와 함께 오전 훈련만 하고 오후 시간 내내 휴식을 취했다. 다음날 제자의 금메달 대사(大事)를 앞두고 있었지만 가까이에서 본 오서 얼굴은 평화로웠다. 오서 본인부터 올림픽을 즐기려는 듯 했다.

오서는 김연아에게 금메달을 강요하지 않았다. 오서는 김연아에게 모든 올림픽 메달은 소중하다고 가르쳤다. 오서는 밴쿠버 동계올림픽 개막 전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김연아에게 평소 해 준 말을 소개했다. “사람들은 모든 게 잘 될 거라고 하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때로는 너도 2등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최선만 다한다면 괜찮다.”

오서의 깨달음은 본인의 처절했던 실패 경험에서 비롯됐다. 오서도 김연아와 마찬가지로 국민적인 금메달 부담감을 느껴봤다. 오서는 1988년 캘거리 동계올림픽에서 캐나다에 금메달을 가져다줄 희망이었다. 캐나다는 1976년 몬트리올 하계올림픽에서 주최국임에도 불구하고 금메달이 없었다. 역대 동·하계 올림픽에서 개최국이 금메달을 따지 못한 나라는 캐나다가 유일했다.

기대는 종종 부담으로 연결된다. 캐나다는 12년 뒤 캘거리 동계올림픽에서 오서를 개막식 기수로 내세웠다. 그만큼 오서에 거는 금메달 기대가 컸다. 그러나 오서는 프리스케이팅 트리플 플립 점프 실패로 은메달에 그쳤다. 캐나다는 캘거리 대회도 노골드로 마감했다.

캘거리 금메달리스트였던 미국의 브라이언 보이타노는 “오서가 은메달이 확정된 뒤 라커룸으로 들어왔는데 샤워기 옆 바닥에 그냥 누워버리더라. 오서는 완전히 멍한 상태였고, 마치 마약을 한 사람 같았다”고 회상했다. 오서 역시 “그 후 10년간 내 캘거리 대회 프리스케이팅 연기 장면을 다시 돌려볼 수 없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결국 오서는 올림픽 은메달 2개로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중요한 시험에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낙방해 본 오서에게 김연아는 대리 삼수생이었다. 새로운 목표가 생긴 오서는 밴쿠버 대회 개막 전 김연아의 평온한 멘털리티 유지에 공을 들였다. 오서는 “매일 연아와 올림픽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있다”고 말했다. 대화 내용 가운데는 오서 자신이 느꼈던 금메달 부담감, 브라이언 보이타노와의 라이벌 구도 등 김연아가 새겨 들어야 할 내용이 적지 않았다. 오서는 어떤 말들이 김연아를 편하게 또는 불편하게 해주는지 알고 있었다.

오서는 김연아의 압박감을 줄여주기 위해 지난해 12월 18일까지 모든 내외신 언론과의 공식 인터뷰를 끝냈다. 오서는 김연아가 금메달을 딴 밴쿠버 퍼시픽 콜리세움 믹스트존(공동취재구역)에서 외신들의 인터뷰 요구에 친절하게 응했다. 김연아가 역대 최고 점수로 쇼트프로그램 1위를 했을 때는 오서에 대한 외신들의 인터뷰가 30분 이상 걸렸다. 그런데도 오서에게 짜증내는 기색은 없었다. 오서는 김연아에게 각종 언론 보도 내용에 크게 신경쓰지 말라는 주문도 했다. 오서는 김연아의 기술 코치 외에 언론담당관 역할도 했다.

김연아는 오서를 그냥 친구처럼 브라이언이라 부른다. 김연아는 믹스트존 같은 공식 인터뷰 장소에서도 ‘오서 코치님’이라 하지 않고 ‘브라이언’이라고 호칭한다. 김연아는 선수와 지도자는 대등하며 지시-복종 관계가 아니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한국 다른 종목에서도 오서-김연아 성공 사례가 이어지길 희망해 본다.

이용훈 체육부 기자 coo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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