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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종 칼럼] 법원 매 맞아도 싸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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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과 집권 한나라당 사이에 조폭들이 흔히 쓰는 일본말로 나와바리(영역) 싸움이 한창이다. 그것이 영업구역 같은 걸 놓고 벌이는 이권 다툼이라면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도 있겠으나 민주주의의 근간에 관한 다툼이어서 문제가 자못 심각하다. 한나라당이 최근 마련한 법원제도개선안을 둘러싸고 양측이 유례없이 격한 표현을 동원해가며 공방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한나라당의 개선안은 대법관 수를 현재의 14명에서 24명으로 늘려 그중 3분의 1을 비법관 출신으로 임용하고, 법무부 장관이 추천하는 외부 인사를 포함시켜 법관인사위원회를 설치하며, 양형(量刑)위원회를 대통령 직속으로 두는 것 등을 골자로 하고 있다.

재수보기가 돼버린 재판

박일환 법원행정처장은 성명을 통해 한나라당이 사법부를 배제한 채 이 같은 내용의 개선안을 만든 것은 삼권분립의 대원칙을 어기고 사법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법을 만드는 건 국회의 권한으로서 이에 왈가왈부하는 법원이 오히려 입법권을 침해하고 있다고 되받아쳤다.

박 처장은 성명에서 “사법부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와 존중심마저 잃은 처사”라고 한나라당을 비난했다. 그러나 사법부는 비난에 앞서 자신들이 왜 최소한의 예의와 존중심마저 받지 못하는 처지가 됐는지부터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과거 독재 정권 하에서 사법부가 저지른 과오들이나 ‘무전유죄 유전무죄’ 같은 비아냥거림은 덮어두기로 하자. 남녘통일애국열사(빨치산)추모문화제에 학생들을 인솔하여 그들을 찬양케 한 중학교 교사에게 내린 판사의 무죄 선고를 납득할 국민이 얼마나 될까. 또 시국선언을 한 전교조 교사들에게 어떤 판사는 유죄를, 어떤 판사는 무죄를 선고하는 상황이니 재판이 재수보기라도 된단 말인가. 이러한 일들이 다반사로 일어나기 때문에 여당이 사법부를 뜯어 고쳐야겠다고 메스를 들고 대드는 것이다.

여당은 법원장악 유혹 버려야

그러면 한나라당은 칭찬받을 처지인가. 물론 최근 일부 판사들이 특히 시국사건들에 대해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판결로 우리를 당황케 하는 경우가 빈발하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이를 기화로 정부(정권)가 사법부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한나라당의 개선안 중엔 그걸 의심할 만한 내용들이 담겨 있다. 지금은 대법원장이 하는 법관 인사를 법무부 장관이 추천하는 외부 인사가 포함되는 법관인사위원회가 할 경우 정부의 입김이 작용하여 법관 인사의 독립이 훼손될 우려가 있다. 또 형량의 기준을 정할 양형위원회를 대통령 직속으로 둘 경우 역시 판사의 고유 영역인 판결에 정부가 크게 영향을 미쳐 사법부 독립을 침해할 소지가 없지 않다. 대법관의 3분의 1을 비법관 출신으로 임용하는 것도 법원으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고, 법에 대한 전문성이라는 측면에서도 위험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은 또 정부가 대법관 임용에 더 많은 지분을 챙겨 구미에 맞는 사람을 집어넣으려 한다는 의혹을 살 수도 있다.

사법개혁 논의가 어제오늘 시작된 게 아니다. 그런데도 개혁에 대한 평가는 매우 낮고 그래서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불만과 불신이 높다. 개혁을 사법부에 맡겨놓다 보니 사법부가 기득권을 내놓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개인의 권리 보호와 함께 (자유민주주의) 체제 수호의 최후 보루이기도 한 사법부는 외부의 비판을 겸허히 수용하여 국민이 그만하면 됐다고 할 정도의 자체 개혁안을 내놓고 뼈를 깎는 각오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정치권은 사법개혁을 각기 여당과 야당이라는 입장에서 정략적 차원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정권은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 민주주의의 확립과 발전이라는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그리고 사법부에 대한 예의와 존중심도 갖춰야 한다. 사법부에 대한 불신과 경멸은 국법질서에 대한 불신과 경멸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법원과 한나라당은 차원 낮은 나와바리 싸움을 중단하고 사법개혁의 본질적인 문제를 놓고 진지하게 토론해야 한다. 감정 섞인 공방전을 계속해봐야 돌아올 건 손가락질밖에 없다.

백화종 전무이사 wjbae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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