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용 칼럼] 무상급식은 선거 쟁점 못 된다 기사의 사진

“국민적 관심사가 된 것을 계기로 ‘왕따’문제 해결에 나설만 하다”

초등학교 때 허벅지에 생긴 3㎝ 정도의 흉터를 볼 때마다 떠오르는 추억이 있다.



1960년대 대도시 지역 초등학교는 한 학년이 10여개 반, 학급당 70∼80명의 콩나물교실이었다. 그 시절 가난한 집 아이들은 구호물자인 옥수수빵이나 강냉이죽을 점심 식사로 때웠다. 내 허벅지 흉터는 어느 여름 주번을 맡아 강냉이 죽과 빵을 타 오다가 ‘바께쯔(양동이)’ 철사에 찢겨 생긴 것이다.

급우 중 10명 정도는 자기 도시락을 옥수수빵, 강냉이죽과 바꿔 먹었다. 동정심 때문이지만 고소한 맛도 별미였다. 당시에는 ‘왕따’를 몰랐다. 아이들도 지금처럼 개인주의에 찌들지 않았고, 부모들도 가난한 집 아이들이든 부자집 아이들이든 제 아이 친구면 다 자식처럼 대해줬다.

내가 다닌 학교에는 고아원 출신이 20명 정도 있었다. 그들 중 나이가 많고 주먹도 세서 ‘대장’ 격인 아이가 반에 있었는데 성격이 온순해 친구들과 잘 어울려 지냈다. 졸업 후 그는 인근의 중학교 축구선수가 됐고 그 후에도 오랫동안 친구들과 교류했다. 또 초가집에 살며, 형제가 많다는 이유로 무료급식을 받았던 다른 친구는 명문대와 한국은행을 거쳐 지금 미국에 살고 있다.

인천의 모 여고는 수년 째 배식 도우미를 하는 대가로 무상급식을 하고 있다. 대부분 학생이 무료급식을 아르바이트처럼 정당하게 일한 대가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민주당이 ‘초·중학생 무상급식 전면실시’를 6·2지방선거 핵심 공약으로 들고 나와 나라가 시끄럽다. 민주당은 무상급식이 의무교육의 일환이라고 주장하지만 원래 취지는 가난한 집 아이들에게 눈칫밥을 먹여서는 안된다는 논리다. 그렇다고 어려운 나라살림에 멀쩡한 부자집 아이들에게까지 공짜 점심을 주자는 건 더 이상하지 않은가. 민주당 단체장이 당선된 지역에서 내년부터 전면 무상급식을 하면 이 경우 한나라당이 당선된 지자체와 또 다른 ‘역차별’이 발생하게 된다.

수세에 몰린 한나라당은 서민과 중산층 유아의 무상보육으로 맞섰다. 그러면서 민주당의 무상급식을 ‘부자급식’으로 규정하고 좌파적 포퓰리즘으로 몰아가는데 치졸하기가 민주당 못지 않다. 어떻게 아이들 밥 먹이는 문제까지 이념 논쟁으로 비화시킬 수 있는가.

무상급식을 표 안나게 해결하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국세청 자료를 활용하면 대상자 식별이 가능해 학교 행정만으로 아이들 모르게 무상급식을 할 수 있다. 여기에도 누락된 학생은 담임이 부모와 상의해 급식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선진국에선 어릴 때부터 신문배달 등으로 자립심을 키워준다. 인천의 여고처럼 배식 아르바이트를 하고 당당하게 점심값을 버는 것도 자립심 고취의 일환이다.

‘이지메(왕따)’는 일본이 원조지만 한국 같은 ‘왕따공화국’은 없다. 무상급식 문제가 국민적 관심사가 된 것은 어떻게 보면 기회일 수도 있다. 물론 주체는 정치인이 아닌, 교사와 학부모가 돼야 한다. 헌신적인 교사들과 세계 최고의 교육열을 자랑하는 학부모들이 자녀에게 가난한 친구를 이해하는 공동체 정신을 길러주는 교육이 필요하다.

고용 악화가 더 심각한 문제다. 지난 달 대졸 여성 실업은 지난해보다 7만명이나 늘어 20만명에 육박했다. 정치인과 고위 공직자들의 자녀들은 취업에 거의 성공했을 테지만 대다수 서민층 자녀들은 인생의 출발선에서 좌절하고 있다. 3000억원이면 3만명을 고용할 수 있다. 전면 무상급식은 한 해 2조원이 든다. 선거에만 눈이 먼 정치권은 자기 이념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유권자들도 무상급식은 표심에서 분리하자.

미국의 100년 숙제였던 건강보험개혁안이 어제 하원을 통과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건강보험 개혁은 나를 위한 것도, 민주당을 위한 것도 아니라, 오로지 미국 국민을 위한 행동”이라고 말했다.

우리 정치권도 무료급식 문제가 표심과 무관한, 진정으로 서민을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 지방선거 후 교육개혁 법안에 포함시켜 재론하기 바란다.

수석 논설위원 hy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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