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처 인사이드-전정희] 미술관과 종친부 기사의 사진

1986년 ‘동물원 옆 미술관’으로 개관한 청계산 자락 국립현대미술관은 지금까지도 두문동 드나들듯 어렵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관람객이 없을 것 같은 곳에 미술관을 세운 공무원들의 답답한 정책 하나가 얼마나 문화 발전에 걸림돌이 됐는지 실감한 대표적 사례였다.



그래서 이를 극복하고자 2010년 1월 서울 소격동 국군 기무사령부 부지에 ‘국립현대미술관 서울(분)관’ 조성에 나섰다. 부지 2만7000㎡에 불과하나 사실상의 본관이 될 ‘서울관’이라는 어색한 이름으로 말이다. 이미 분관 덕수궁미술관도 운영되고 있다.

한데 장고 끝에 악수라고 이번에도 사려 깊지 못한 결정임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조선 후기 규장각과 소격서, 사간원 등이 있었고 고종 이후 흥선대원군이 주도해 종친부가 중건됐던 터에 분관을 짓겠다고 할 때부터 예견됐던 일이다.

현재 기무사 터는 서울대박물관의 시굴조사 결과 종친부 옛 건물터 흔적 일부와 조선전기, 고려 말기 유적 등이 발견됐다. 이에 따라 발굴지도위원회에 전면 발굴을 신청해 허가가 떨어진 상태다.

혹자는 옛 유적을 꼭 그 자리에 복원해야 하느냐고 물을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런 대답이 가능하다. 조선 후기, 근·현대사의 역사가 멸절되지 않은 곳에 주변 환경과도 어울리지 않는 옹색한 콘크리트 분관을 꼭 그렇게 지어야하는가.

종친부(宗親府·왕의 친척을 다스리던 관청) 본건물은 80년 보안사령부가 그 터를 테니스장으로 쓰기 위해 밀어 버리려고 했다. 다행히 뜻있는 사람들이 간신히 뜯어말려 북촌 정독도서관(옛 경기고) 한구석으로 옮겨 살릴 수 있었다.

앞서 종친부 건물군은 대한제국과 일본강점기에 외빈이 묵는 영빈관과 서고로 전용되다가 20년대 경성여자의전·경성의전(서울대 의대 전신)이 생기면서 행랑이 헐리는 등 훼손이 본격화됐다. 60년대에는 아쉽게 외삼문, 이승당 등이 없어졌다. 의전 병원 건물은 한국 근대 건축의 거두 박길룡의 설계로 지금도 남아 있다. 이와 함께 79년 말 박정희 전 대통령이 김재규의 총을 맞고 후송된 현대사 현장이기도 하다.

이 같은 점 때문에 한국건축역사학회 등은 지난 19일 국립고궁박물관에서 학술발표회를 갖고 역사적 가치를 조명하고 종친부 복원을 주장했다. 또 시굴 조사한 이선복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는 “조선 전기 건물 기초와 그 이전 시기의 문화층이 존재할 가능성도 있다”고 밝히고 있다. 역사학계와 건축학계가 정부의 성급한 결정을 안타깝게 여긴다.

그런데도 밀어붙이는 것은 문화체육관광부의 대안 부재 탓이다. 미술계는 20여년간 이곳에 미술관 건립을 주장했고, 간신히 이를 관철할 무렵 정부가 이곳에 정쟁의 소지가 있는 현대사박물관을 세우겠다고 해 미술계의 반발만 사 지금처럼 굳어지고 말았다.

우려되는 점은 분관 또한 산속에 위치한 과천 본관처럼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경복궁역과 안국역은 멀고 대중교통은 불편하다. 남산 국립극장처럼 말이다. 환호할 사람들은 인근 화랑 대표들뿐이다.

더구나 옹색한 분관이 들어서면 팔판동을 중심으로 한 북촌까지 망가뜨린다. 이 일대가 미술벨트입네 하고 마이크 든 가이드들이 골목골목 누비고 다니면 북·서촌 집주인들이 떠나버려 온기 넘치는 고즈넉한 맛을 잃게 된다. 근대건축학자 김정동(목원대) 교수는 이를 백지화하고 종묘-남산 축을 잇는 세운상가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개인적으로는 접근성과 부지면적이 뛰어난 혜화역 한국방송통신대를 대안으로 제시하고 싶다. 방통대 부지 5만7528㎡와 과천 미술관 6만6916㎡를 맞바꾸는 안이다. 방통대가 원격대학인 만큼 정부의 혜택 제시에 달려있다고 볼 수 있다. 문화부는 아시아미술의 중심 미술관을 세우겠다고한 만큼 2012년으로 완공을 못 박지 말고 관람객 입장에서 다시 생각할 일이다.

전정희 인터넷뉴스 부장 jhje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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