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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김상근] 감리교에는 구원이 없다?

[삶의 향기-김상근] 감리교에는 구원이 없다? 기사의 사진

오래 전에 소천하신 할아버지는 장로교의 고신파 목사로 한평생을 사셨다. 아래로 여섯 아들을 두셨는데 그중에 셋이 장로교 목사로 성장했다. 나의 부친이 그 세 형제 중 한 분이셨고, 나도 목사 안수를 받았으니 3대째 목사 집안이 된 셈이다. 그러나 목회자의 가업을 이어오는 도중에 약간의 변동이 있었다. 나는 유학 중에 미국 연합감리교회(United Methodist Church)에서 안수를 받았기 때문에 장로교에서 감리교로 교적을 바꿨다. 나는 지금도 미국 감리교회에 소속된 감리교 목사다.

나는 고신 교단의 터전인 부산에서, 고신 목사의 아들로 성장했기 때문에 보수적인 장로교 신앙을 갖게 되었다. 나는 지금도 버릇처럼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살기를 바라는 기도를 드린다. 어릴 때 암송했던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때문일 것이다. 사람의 목적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으로 규정했던 장로교 기본 교리를 외워왔기 때문이다.

교권 싸움 추악한 이전투구

나는 보수적인 장로교 전통에서 자라면서 감리교회에는 구원이 없다고 배웠다. 지금 생각하면 장로교의 터무니없는 신학적 독선이고, 감리교 신학에 대한 무지의 소치가 분명하다. 그러나 내 어릴 적 고신 교회에서는 장로교의 또 다른 보수파인 합동 측이나 통합 측 교회도 신앙과 신학의 변절자 집단으로 볼 정도였으니 감리교회를 바라보는 시각은 오죽했으랴.

나는 미국에 유학 가서 우연한 기회에 장로교에서 감리교로 교적을 옮기게 되었다. 미국에 도착한 첫 날, 무작정 찾아갔던 교회가 뉴욕 스테이든 아일랜드에 있던 한인 감리교회였다. 나는 미국에서 ‘구원이 없는 교회’에 출석하게 되었고, 결국 감리교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 미국 에모리 대학에서 신학 석사(M.Div.)과정을 이수하면서 감리교회 창립자 요한 웨슬리의 신학에 대해 깊이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그동안 장로교 신자로서 내가 가지고 있던 신학적 난제들이 해결되는 큰 감동을 받았다. 나는 장로교회의 배타적인 칭의론과 예정설에 동의할 수 없었다. 오히려 인간의 노력을 강조하는 감리교회의 성화론에 더 호감이 갔다. 1980년대에 대학생활을 했던 나는 민주화의 격동기를 거치면서 역사에 책임지는 개인의 노력을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우리 시대의 역사적 사명과 감리교의 신학이 더 어울리는 것 같았다. 결국 나는 감리교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고 그 선택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한국 감리교회의 교권을 둘러싼 추태를 지켜보면서 어쩌면 어릴 때 들은 장로교 목사님들의 말씀이 맞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정말 이대로의 한국 감리교회에는 구원이 없는 것 같다. 교회라고 이름 붙일 수 없는 사적 집단에, 목사라고 이름 붙일 수 없는 인간들이 모여 추악한 탐욕의 막장 드라마를 펼쳐 보이고 있다.

성전 허물면 다시 세워져

지금 벌어지고 있는 감리교 사태의 본질은 교권에 눈 먼 사람들의 이전투구다. 감신, 목원, 협성으로 이루어진 세 신학교 파벌이 벌이는 교권 싸움이 분명하다. 내부의 자성이나 개선 노력으로 해결 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차라리 총회를 개최해 교단 해체를 결정하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일지 모르겠다. 감리교회에 소속된 목회자들은 교회 간판을 당분간 내리는 것이 좋겠다.

권력과 돈에 눈 먼 자들에게 예수는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이것을 걷어치워라.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말라(요: 2: 16).” 구원은 없고 탐욕만 난무하는 교회, 예수의 말씀에 따라 걷어치워라. 그래도 크게 걱정할 것 없다. 예수께서 이렇게 약속하셨기 때문이다.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만에 다시 세우겠다.”

김상근 연세대 교수 (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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