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말 걸기-손영옥] 국가가 뭘 해줬지? 기사의 사진

그건 참, 재미있는 반응이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지난주 건강보험개혁 법안을 발효시켰을 때 말이다. 미국 언론은 1912년 민주당의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이 대선공약으로 내세운 이래 약 100년 만에 전국민 건강보험 시대가 열리게 됐다고 자평했다.

그런데, 그 뉴스를 접하는 주변 사람들이 새삼 우리의 건강보험제도에 자긍심 같은 걸 느끼는 것 같았다. 세계 최강국 미국에 대해 좀체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를 열지 못하는 ‘선진국 막내’ 한국이 우월감을 맛보는 순간도 있구나, 싶었다. 사실 우리는 1989년 전국민 건강보험시대를 열지 않았나.

반면, 일본에서 들려온 뉴스는 부러움을 느끼게 했다. 일본은 4월부터 고교무상교육을 실시한다. 54년 만에 자민당을 무너뜨리고 집권한 민주당 정부가 선거공약을 실천한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고교 수업료를 내는 나라는 일본과 한국, 이탈리아, 포르투갈 정도여서 법안 통과가 무리 없이 이뤄졌다고 한다.

이런 와중에 대한민국에선 무료급식 문제가 논란이다. 고교무상교육도 아닌 초·중등무상급식 문제가 6월 지방선거에서 핵심 쟁점이 된 것이다. 혹자는 선거 때마다 도지는 ‘계층간 편 가르기’라며 정치 이슈화 자체를 부정적으로 본다. 얼마나 해결할 과제가 많은데 ‘급식 문제 따위’로 시끄럽게 구느냐고 비아냥거리는 이도 있다.

하지만 무상급식 문제는 조금도 사소하지 않다. 오히려 이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는 21세기 대한민국이 지향해야 할 국가의 역할에 대한 성찰의 계기가 될 수 있다. 한나라당은 전면 무상급식을 주장하는 야당을 ‘부자 급식주의자’라고 몰아세운다. 그러면서 지원 대상을 늘리더라도 저소득층과 농어촌에 한정하겠다는 당정안을 내놓았다.

과연 무상급식은 국가재원만 낭비하는 ‘부자급식’일 뿐인가. 중산층 자녀들은 부모가 경제적 능력이 있다는 이유로 공짜 점심을 먹어서는 안 되는가. 우리나라에서 월급쟁이의 50% 가량은 세금을 내지 않는다. 저소득층에게 정부가 각종 공제 혜택을 주기 때문이다. 현 정부는 부자들에게도 종합부동산세 등 세금 감면을 해줬다. 애꿎은 건 중산층이다. 세금만 내고 복지에선 소외된다.

서민층은 물론이고 중산층의 삶마저도 갈수록 팍팍하다. 집값은 올라가고 사교육비 부담은 느는 등 가족이 필요로 하는 것들의 비용이 치솟고 있기 때문이다. 실업 불안도 크다. 전면 무상급식 같은 ‘사소한’ 복지는 경제 위기로 언제 저소득층으로 전락할지 모르는 중산층의 끝자락에 선 이들을 살리는 출발이다.

미국이 건보개혁을 통해 전 국민에게 혜택을 주겠다고 나선 것도 국가의 허리인 중산층을 두텁게 하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다. 그런 미국을 보고 유럽은 “세계에서 가장 강하고 부유하다는 미국이 마침내 20세기에, 21세기가 아닌 20세기에 진입했다”고 조롱한다.

우리는 왜 유럽을 바라보지 못하는 것일까. 북유럽 강소국 핀란드의 경우 정부 지원을 받는 사회 주택, 대학·전공 상관없이 입주 가능한 학생 주택, 요양시설 기피 노인들을 위한 24시간 서비스 주택, 실업 불안을 크게 덜어주는 고용연금, 아이들을 집에서 키우면 국가가 월급을 주는 가정탁아보육사 제도 등을 실시한다. 상상 초월의 복지다. 육아·주거·교육·노후 문제에 대한 사회적 보장이 상대적으로 미진한 우리의 허를 찌르는 것들이다. 신자유주의가 주류 이념이 된 나라에서 우리는 그런 걸 국가에 요구할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어느 날, 직장에서 잘렸을 때의 생계에 대한 공포와 자식 교육에 대한 염려, 노후에 대한 불안을 주로 개인의 몫으로 안고 살아갈 뿐이다.

‘유리 봉투’를 가진 월급쟁이라서 꼬박꼬박 원천징수로 소득세를 국가에 바치는 나는, 어느 개그맨처럼 자조하듯 묻게 된다. 근데, 국가가 내게 해 준 게 뭐가 있지?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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