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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진선의 동물이야기] 얼룩말이 펼치는 ‘작업의 정석’

[배진선의 동물이야기] 얼룩말이 펼치는 ‘작업의 정석’ 기사의 사진

흑백의 줄무늬를 가진 얼룩말은 참 매력적인 동물이다. 그래서 어느 동물원이나 잘 보이는 명당자리에는 얼룩말이 있다. 얼룩말은 줄무늬에 따라 4종류로 나뉘는데 그중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동물이 그랜트얼룩말과 그래비얼룩말이다. 그랜트얼룩말의 줄무늬가 그래비얼룩말의 줄무늬보다 더 굵고, 그랜트얼룩말보다 그래비얼룩말이 더 체격이 크다. 그랜트얼룩말은 풀을 찾아 초원을 돌아다니고, 그래비얼룩말은 풀을 먹지만 나뭇잎이나 좀 지저분하고 소금기 있는 물도 먹을 수 있어서 우두머리 수컷은 이리저리 돌아다니기보다는 자기 땅을 지키며 살아간다.

무리를 이루는 방법도 다르다. 그랜트얼룩말은 우두머리 수컷과 암컷 여러 마리가 가족무리를 이뤄 평생을 같이 살아간다. 무리의 크기가 커지지 않도록 하고, 근친번식을 예방하기 위해 수컷이 태어나 어느 정도 자라면 어미가 무리에서 아들을 쫓아내 버린다. 암컷도 마찬가지로 성숙하면 무리를 떠나게 된다. 암컷들은 첫 번째 발정이 오면 뒷발을 벌리고 꼬리를 번쩍 치켜든다. 그러면 멀리서 무리 주위를 맴돌고 있던 독신자 수컷이 이 신호를 보고 암컷을 꼬여내기 시작한다. 자신을 데려가 달라는 일종의 신호인 셈이다.

그러나 무리에 있던 나이 든 암컷들은 발정이 와도 외부로 드러내지 않는다. 가까이 있는 우두머리 수컷만 다가와 코를 킁킁거리고, 암컷의 엉덩이와 옆구리를 주둥이로 쿡쿡 찌르면서 암컷이 오줌 누기를 기다려 그 냄새를 맡고 발정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

반면에 그래비얼룩말 우두머리 수컷은 자신의 세력권을 만들어서 주기적으로 자기 땅의 경계를 돌아보면서 곳곳에 똥을 누어 경계 표시를 한다. 마치 목장주가 자신 목장의 울타리를 점검하고 다니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다가 자기 영역 안에 발정이 온 암컷이 있으면 교미를 할 수 있는 우선권을 갖게 된다. 하지만 암컷들은 이리저리 움직이기 때문에 그래비얼룩말의 무리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항시 유동적이다. 우두머리 수컷도 땅만을 지킬 뿐 암컷이 오가는 것에 대해 관여하지 않는다.

서울동물원에는 혼자 사는 그래비얼룩말 암컷이 있다. 새로 들어온 수컷마다 뒷발로 차서 죽음에 이르게 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새로운 짝을 구하지 못해 혼자 사는데 몇 년 전부터는 외롭지 말라고 블레스복이라는 영양을 같이 살게 했다. 그러나 우리의 바람과는 달리 그 둘은 서로를 철저히 외면하면서 같이 있는 모습을 한 번도 보여주지 않고 있다.

서울동물원 동물운영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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