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방희선] 사법개혁의 참된 길 기사의 사진

또다시 사법개혁이 논란거리다. 오랜 세월 반복되었으면서도 매번 떠오르는 건 무슨 연유인가. 역대정권마다 착수되었고 필자의 법조입문 이래 4반세기가 넘도록 끝없이 거듭된 주제였다. 그럼에도 어김없이 거론됨은 필시 구두선에 그친 미완의 과제였기 때문이리라. 지금도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구호가 살아있고 고무줄형량이니 전관예우니 하는 불신과 의혹이 해소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가. 이번에야말로 참된 개혁의 실천으로 이 논란의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그러자면 법조의 중심인 법원이 올바른 개혁으로 진정한 변화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

폐쇄적 관료주의와 순혈주의로 인한 고립적 행태는 사법의 발전과 신뢰에 치명적이다. 과거 수차례 사법파동 때마다 뜻있는 판사들이 지적해 온 고질적 병폐 아닌가. 모두가 독립된 헌법기관인 법관들의 실상이 조직 내부에선 한갓 인사권자 한 사람의 바둑돌에 불과한 초라한 것이어서 상부의 눈치나 살피게 되지 않았던가.

대법원장에 전권 맡겨선 안돼

그런 가위눌림이 근래 법원장의 언급을 재판개입이라 논란하는 과민반응을 빚기도 하지 않았던가. 따라서 판사들의 보직과 인사가 객관적 심사와 평가에 따른 합리적 절차를 거쳐야지 대법원장 1인의 전권에 맡길 수는 없는 것이다. 오늘날 공사 간 모든 조직의 인사관리가 투명한 심사절차로 객관화되어야 함은 재론의 여지가 없는 일이다. 더구나 법원은 그들만의 세계가 아닌 국민의 사법이므로 사회 일반의 법의식과 윤리를 공유할 개방적 구조를 취해야 한다. 미국의 연방판사나 주판사 모두 의회나 법조단체 등 외부전문가들의 심사에 따라 결정되고, 영국 등 선진국 모두 같은 원리를 취하기에 대통령, 주지사가 임명하든 총리가 제청임명하든 문제없는 게 아닌가.

범죄양형의 문제 또한 판사의 전인격적 판단이니 법관의 고유권한이니 하는 시대착오적 인식을 버려야 해결될 일이다. 형량 결정 역시 범죄판단과 똑같이 입법자의 설정에 따라 이를 충실히 적용할 대상에 지나지 않음은 구미 선진국의 법리나 학문상 검증이 끝난 일이다. 미국의 양형기준제나 이를 전담하는 연방양형위원회 설치입법이 현직 연방판사의 제창에 의해 실행된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따라서 법관재량 운운의 낙후된 사고를 버리고 객관적인 양형기준체계를 하루 속히 도입하여, 매번 고민하는 수많은 판사들을 불신과 의혹의 늪에서 해방시키는 것이야말로 사법신뢰의 핵심임을 직시해야 한다. 이로써 판사 간 편차나 재량시비를 불식하고 입법에 의한 합리적 양형기준과 양형업무 전문가를 통합 운용할 차원 높은 체계를 추구하여야 할 것임에도 사무직원에 의한 양형조사 같은 단편적 방안으로 법조 간 갈등만 초래하지 않았는가.

법원의 관료적 권위주의에 급급한 미봉책으로 내놓은 역대 사법개혁안이 왜 실효성 없는 허구적 장식이었는지 이로써 분명해진 셈이다. 인사권자를 둘러싼 연고와 정실의 잡음을 없애 성실하고 유능한 판사가 당당히 대우받고, 국민의 보편적 법의식과 소통할 수 있는 열린 구조의 재판이 되도록 인사의 변화와 다양성이 강구되어야 한다. 이 당연한 명제 앞에 합심동참하기보다 삼권분립 운운의 기이한 구실로 기득권을 지키려는 사법수뇌부의 구차한 행태는 도리어 연민을 자아낼 따름이다.

객관적 양형기준제 도입이 핵심

그처럼 사법의 독립과 권위를 부르짖는 대법원이 어째서 지난 정권 대통령과 청와대가 만든, 법적 근거도 없는 ‘사개추위’에 들어가 얌전히 따랐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최근 격앙된 어조로 국회논의를 비난하던 법원행정처장이 대법관의 신분으로 총리 휘하에 청와대비서관과 함께 앉아 일한 것은 무슨 연유인지 도무지 모를 일이었다.

이런 과거의 흠을 떠나 이제라도 국민에게 봉사하고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열린 조직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열린 마음으로 국민대표기관인 의회의 논의에 다함께 동참하여 참된 사법 법조개혁의 방안을 마련하기 바란다.

방희선 동국대 교수 법학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