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정재호] 뉴스통신사가 가야할 길 기사의 사진

4년 전 ‘포털저널의 허와 실’이란 주제로 3편의 글을 인터넷에 연재한 적이 있다. 네이버 등 인터넷 포털이 뉴스를 장악하면서, 그 기대와 우려를 표현한 ‘포털저널리즘’이란 용어가 뜨고 있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당시 인터넷 미디어 환경을 포털 중심주의에 한정하지 않고 포털과 뉴스통신사의 공생관계로 보고 이 둘을 묶어 ‘포털저널’로 규정했던 기억이 난다. 전통적인 의미에서 뉴스통신사는 신문사와 방송사에 뉴스를 공급해주는 도매상이다. 반면 신문사와 방송사는 도매상에게서 구매한 뉴스를 참고서로 활용, 독자적인 뉴스를 생산해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소매상이다. 신문은 하루 한 번, 방송은 지정한 시간에 마감이 있었다면 뉴스통신사는 24시간 내내 마감과 지면의 제한이 없다.

이렇듯 마감 없는 뉴스통신사가 소비자 격인 포털과 손잡고 뉴스 속보를 공급하기 시작했으니 시장과 여론을 장악하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뉴스는 공짜’라는 인식을 깨기 위해 언론사들이 유료화를 시도했을 때 가장 많은 경제적 수혜를 뉴스통신사가 보았다. 그만큼 타 언론사들은 ‘헐값’에도 포털에 쩔쩔매야 했다.

소매상 뉴스통신사에 날개를 달아준 것이 참여정부다. 참여정부는 출범 직후인 2003년 5월 뉴스통신진흥법을 6년 한시법으로 제정했다. 이 법으로 연합뉴스는 ‘국가기간(國家基幹) 뉴스통신사’로 지위가 격상됐다. 이에 힘입어 연합뉴스는 현재 13개 지역 45명 특파원을 파견하는 등 국내외 최대 규모의 취재망을 확보했다. 그러면서 인터넷에서 조·중·동(메이저 신문 지칭)과 방송을 제치고 부동의 1위에 오르는 부수효과를 얻었음은 물론이다. 조·중·동을 그렇게 미워하고 언론에 대못질한 참여정부가 왜 뉴스통신사에 정부 예산을 지원하고 뉴스 소매상으로의 변신을 방치했는지, 그 이유를 필자는 아직도 알 듯 모를 듯하다.

그 글을 쓴 지 4년이 지나 ‘신문의 미래’를 고민하는 자리에 다시 와 보니 미디어 환경은 확 변해 있었다. 바야흐로 모바일 시대가 만개했고 정부는 올해 안에 종합편성과 보도전문 방송 채널 허가를 예약해 놓고 있다. 하지만 신문이 비벼볼 공정 경쟁 조건은 4년 전보다 나아진 게 없다는 진단이 내려졌다. 아니 더 열악해졌다.

이미 알다시피, 글로벌 금융위기로 모든 신문이 위기에 빠져 있던 지난해 4월 정부는 법을 개정, 항구적으로 뉴스통신사에 예산을 지원하는 길을 터주었다. 연합뉴스는 비판 여론을 의식한 듯 사고(社告)를 통해 공익성·공공성과 함께 ‘중앙과 지방, 신·구 미디어 부문의 상생(相生)’을 도모할 것이라고 천명했다.

정말 그랬을까. 지난 2월 초 ‘모바일 뉴스룸’을 구축하고 아이폰 등 스마트폰을 통한 뉴스 서비스를 개시했다고 밝혔다. 이른바 ‘모바일 소매상’ 채비를 갖춘 것이다. 인터넷에서 속보에서 밀리고 유료화에 실패한 신문들이 긴장하는 대목이다. 타 언론사들도 앞다퉈 스마트폰 서비스를 내놓고 있기는 하지만 ‘속보’라는 폭탄 앞에서 과연 얼마나 버텨낼 수 있을지 미지수인 것이다.

신문의 미래가 암울한 것은 1차적으로 신문의 내재적 요인에 있다는 것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인터넷에 이어 모바일에서마저 불공정한 게임의 장이 형성된다면 신문의 미래는 없고 여론의 다양성은 사라지고 만다. 헌법재판소가 2005년 6월 국가기간 뉴스통신사의 합헌성을 인정하면서도 “그 혜택 부여가 6년간만 효력을 가지므로, 이런 (공정한) 경쟁 제한 효과가 영구적인 것은 아니다”고 판시한 것을 정부와 연합뉴스는 새겨봐야 한다.

국가 지정 뉴스통신사는 국내에서 신문의 영역을 잠식하는 뉴스 소매상의 강자로 비쳐져서는 안 된다. 글로벌 뉴스통신사로서 전 세계에 한국을 알리는 다국어 서비스를 확대하고, 우리의 눈으로 글로벌 소식을 소비자들에게 알리는 공적 기능과 역할에 더욱 매진해야 한다. 그 바탕 위에서 뉴스통신사와 타 언론 간 상생의 길은 모색될 것이라 믿는다.

정재호 미래전략팀장 jhj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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