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 옛 그림] (14) 저 매는 잊지 않으리 기사의 사진

원 세조 쿠빌라이는 매 사냥을 즐겼다. 사냥 길에 7만 명을 동원했다고 마르코 폴로가 증언했다. 그 호들갑에 고려왕조가 시달렸다. 원나라에 사냥 매인 해동청을 바치려고 온 산야를 뒤졌다. 조선의 매 사냥도 성했다. 나라님이 화원들에게 전국의 매를 그리게 했다는 기록이 보인다.

조선 후기 화원인 정홍래는 매 그림에 능란했다. 그는 우뚝한 바위에 앉은 바다의 매를 여러 점 그려 조정에 올렸다. 놀치는 물보라 위로 댕댕한 바위 솟구쳤는데, 열보라 한 마리가 고개를 외로 꼰 채 응시한다. 깃을 펼치면 구름 낀 하늘이 가깝고, 눈을 굴리면 참새가 사라진다는 그 매다. 앙다문 부리와 부둥킨 발톱이 냉갈령이라 이글거리는 해가 무색하다.

그림의 배경이 어딜까. 다들 동해 일출을 그렸다고 말한다. 그런가. 조선의 매는 해안 절벽에 둥지를 트는 텃새다. 옛 기록을 보면, 해주목(牧)과 백령진(鎭)에 서식하는 매를 으뜸으로 쳤다. ‘흰 깃털의 섬’이 백령도다. 백령도의 매! 서쪽 바다를 물들이는 비장한 일몰, 들끓으며 뒤척이는 너울성 파도, 용맹 담대한 기상을 자랑하는 매…. 이 매가 누구의 화신인가.

백령도 앞바다가 통곡한다. 홀연히 서해로 날아든 매. 못다 핀 임들의 꿈을 저 매인들 차마 잊겠는가.

손철주(미술칼럼니스트·학고재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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