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용 칼럼] 조용히 옷을 벗겨라 기사의 사진

“군사작전 같은 교육계 비리 수사… 아이들은 선생님을 어떻게 생각할까”

지난달 과로로 순직한 서울 불암고의 신호근 교장(55). 개교 2년 만인 2007년 부임한 신 교장은 사교육 없이 명문고를 만들어 보자며 900일을 무휴일 출근하며 노력했다. 사심 없는 교장의 열정에 교사들도 자연스럽게 따라 작년 졸업생의 50%, 올해 졸업생의 40%이상을 서울 지역 대학에 진학시켜 사립고에 못지않은 공립고로 만들었다. 또 하나. 천안함 실종자 중 처음 인양된 고 남기훈 상사의 부인은 초등생 두 아들을 아버지의 죽음을 눈으로 확인한 다음 날에도 여느 때처럼 묵묵히 학교에 등교시켰다. ‘공교육은 살아있다.’



그런데 올 들어 사흘이 멀다 않고 터지는 교육비리를 보며 참담하기가 그지없다. 지난해 9월 학교 시설공사 수사로 시작된 교육비리는 고구마 줄기처럼 줄줄이, 양파 껍질처럼 까발려지고 있다. 방과후학교 비리에 이어 서울시 교육청 간부들의 장학사 매관매직으로 절정에 달했다. 지난달엔 수학여행 비리에 연루된 수도권의 전·현직 초중고 교장 157명이 무더기로 경찰 수사를 받았다. 서울은 초등학교 교장 7명 중 1명 꼴로 비리에 연루됐다. ‘벌거벗은 교장님’이다. 최고의 명문 외고는 21억원 불법찬조금 모금으로 교장과 교직원 수십 명이 징계를 당할 처지다. 이달 말 전국적인 수사 결과가 발표되면 건국 이래 최대의 교육비리로 기록될 것이다.

“교장선생님, 요즘 교육비리 내사와 자체 감사가 많은 것 알고 계시죠? 사생활이 복잡하시던데 확대되면 골치 아프잖아요. 적당히 돈으로 해결하죠?” 교과부가 비리 근절책으로 ‘1억원 신고포상금’을 발표하자 최근 김해지역 초중등 31개 교장실로 잇따라 걸려온 협박성 전화다. 교장들은 이제 협잡꾼들로부터도 조롱받고 있다. 또 모든 교원은 ‘교(敎)파라치’의 감시 대상으로 전락했다.

공교육 현장인 학교가 이렇게 망가진 일차적 책임은 교원에게 있지만 전적으로 이들 탓만 할 수는 없다. 수십 년 누적돼 온 비리를 ‘통상적인 일’로 치부하고 감시감독을 소홀히 한 교과부와 교육청 등 당국의 책임도 크다. 학연, 지연으로 얽힌 비리 관행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이 이를 반증한다. 언론과 수사기관도 자신의 자녀를 학교에 인질로 맡겼다는 생각으로 비리에 눈감아온 책임을 면할 수 없다. “내 자식만 잘 보이면” 하는 학부모도 마찬가지다. 교육비리는 우리 사회 모두가 공범이다.

전국 40만 교사들의 사기가 땅에 떨어진 지는 오래지만 교장의 권위까지 추락하게 된 것은 충격적이다.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말라고 했던 만큼 국민들은 실망을 넘어 배신감을 느끼고 있다.

하지만 부작용을 생각하지 않고 이처럼 일시에, 싹쓸이하듯 충격요법으로 교장 망신주기를 한 것은 유감스럽다. 썩은 환부를 도려내야 하는 것은 당연하고 시급하지만 비리 결과 발표 방법이 너무 거칠다. 훌륭한 선생님들도 많은데 소수의 교사 때문에 모든 선생님들이 전부 비리를 저지르는 것 같은 인상을 주었다. 서울만큼 썩지 않은 지방 학교 교사들, 또 서울 지역의 7명 중 6명의 건전한 교장들도 함께 의심을 받게 됐다. 공교육의 앞날을 생각하면 졸속 처리라는 느낌을 지울 수없다.

교장이 이럴진대 매일 아이들과 얼굴을 대하는 교사들의 심정은 얼마나 참담할 것이며, 무엇보다 아이들은 이제 교장과 교사들을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우리 학교 현실은 워싱턴DC 미셸리 교육감이 학교를 폐쇄하고 교사들을 실직자로 만들어 버리듯 할 수 있는 시스템이 아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어제 청와대 회의에서 훌륭한 교사들까지 매도당하게 돼 안타깝다며 “교육이란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없다. 어떤 정책도 시간이 걸리고 차분히 바꿔나가야 한다”며 신중한 정책을 주문했다. 수십 년 묵은 비리 관행인 만큼 사려 깊게 처리하라는 주문일 게다, 비리 교장들의 경중을 가려 순차적으로 조용히 옷을 벗기는 방법도 있을 듯하다. 백년대계라는 교육정책이다. 군사작전하듯 집행하면 교각살우(矯角殺牛),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 아닌가. 공교육을 살리는 교육개혁을 기대한다.

수석 논설위원 hy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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