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처 인사이드-정철훈] 봄의 실종 기사의 사진

올 봄은 무척 더디다. 더디다 못해 실종됐다는 느낌이다. 봄은 천안함 침몰과 함께 백령도 깊은 해저에 수장되어 있는 듯하다. 한치 앞을 분간할 수 없는 시야 제로 상태가 계속되고 있기는 지상이든 해저든 마찬가지다. 국가적 심연이 벌써 2주 가까이 계속되고 있다. 한마디로 봄의 침몰이다. 그런데도 달력은 어느새 4월로 와 있다.



예년 같으면 진달래 만개했을 4월인데 올핸 서울에서 진달래 구경하기가 무척 힘들다. 지난 주말에 올랐던 북한산 진달래능선에조차 진달래는 피어 있지 않았다. 부동산 시세가 바닥권인 서울 수유리 근방에서 25년을 살아오면서도 매년 4월이면 연분홍빛 진달래능선을 오르는 일로 위안을 삼아온 터라 아쉬움은 적지 않다. 하산길에 들른 4·19민주묘지 앞 커피숍. 60, 70대 동네 주민들이 삼삼오오 모여 한담을 나누고 있었다. 무료하던 차에 그들의 한담을 귀동냥으로 듣는다.

“진달래라고 하면 어딘가 좌경화된 느낌이 들지 않나?” “진달래 하면 좌빨이 생각나게 만든 것도 잘못된 이념 교육 때문이지. 거 왜 있잖나. 레드 콤플렉스 말이야.” 서두는 듣지 못했지만 진달래능선을 두고 하는 말이라는 것은 쉬 짐작이 갔다. 그렇지 않아도 수유 근방은 예부터 터가 세서 반골 좌파들의 땅이라는 유의 풍설을 간간이 듣긴 했다.

여기엔 1960년대에 도심 철거민들이 수유리로 이주해 저소득층 집단 부락을 이룬 것과 관련이 없진 않겠지만 서슬 퍼런 3공화국 시절 수유리에 모여든 야당 인사들을 빗댄 호사가들의 입담에 기댄 측면도 없지 않을 터다. 민중신학자 안병무가 살았던 수유리 집은 76년 3·1민주구국선언 사건 이래 90년대 초 강남 우면동으로 이사하기 전까지 재야 인사의 사랑방이었다. 당시는 도청 때문에 암호를 사용했는데 그 집은 ‘마르다의 집’이라 불렸다. ‘마르다’는 성서 속 인물이다. 영성에 탁월했던 그의 동생 마리아와 달리 돌봄과 헌신에 탁월했던 여성이 ‘마르다’이다.

‘마르다의 집’은 재야 인사들의 아지트였다. 구속자 가족모임, 해직교수 모임은 물론 시인 고은의 결혼식이 치러진 곳도 마르다의 집 마당이었다. 신년모임, 4·19모임, 구속자 석방축하 모임도 이 집에서 열렸으니 이런 역사적 배경이 아니더라도 수유리는 그 지명에서부터 정겹다.

수유리는 조선시대 당시엔 한성부 동부 숭신방(崇信坊) 수유촌계(水踰村契)였다. 1914년 성 밖에 위치한다 하여 경기도 고양군 숭인면에 소속되었다가 49년 서울시 성북구에 편입되었다. 73년 도봉구를 거쳐 95년부터 강북구에 속해 있는 수유리는 북한산 골짜기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마을을 넘쳤기에 물 ‘수’(水)자와 넘칠 ‘유’(踰)자를 써 붙여진 이름이라는 게 정설이다. 지금도 무너미, 빨래골, 보등골, 소군네 등 옛 자연부락 명칭이 그대로 남아 있는 수유리 일대를 문화공간으로 조성하려는 움직임이 구청 차원에서 추진되고 있다고 한다. 북한산 개울을 대대적으로 정비해 4·19민주묘지와 연계한 탐방 프로그램을 가동할 것이라고 하니 그 효과는 수유 너머 강북권의 잠재가치까지 증폭될 것으로 기대된다. 그중에서도 가장 긴요한 게 문화벨트 조성이라는 건 두말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 중심에 4·19민주묘지가 자리잡고 있다.

사실 4·19묘역은 3공 시절만 해도 재야나 야당 인사들의 영토였다. 그러던 것이 요즘 4·19추모식은 대통령이 참석하는 국가 행사로 치러지고 있다. 행사 당일이면 무전기를 든 경찰들이 외곽 경호를 위해 진달래능선까지 쫙 깔려 있다. 산을 오르다 잠시 멈춰 호흡을 고르는 동안 그들의 시선과 마주치면 그렇게 민망할 수가 없다. ‘4월과 경찰’, ‘4월과 국가’라는 단어 조합이 어딘지 어울리지 않는다고 느껴지는 건 혼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그만큼 4월은 민중의 계절이라는 인식이 자리잡고 있다. 해마다 4월이면 시인 신동엽의 ‘껍데기는 가라/4월도 알맹이만 남고/껍데기는 가라’는 시구를 떠올리곤 했지만 올해는 T S 엘리엇의 ‘4월은 잔인한 달’이라는 시구가 유난히 떠오른다. 실종된 봄은 언제쯤 수면 위로 인양될 것인지, 아득하고 아득하다.

정철훈 문화부장 chjung@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