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곤 칼럼] 신뢰가 실종된 사회 기사의 사진

“아직도 실종자들이 제 옆에 있다고 느껴진다. 살아 있다는 희망을 갖고 복귀 신고를 기다리고 있다.”

침몰한 천안함 함장 최원일 중령은 그렇게 말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최 함장과 가족, 그리고 조국은 언제까지나 그들의 복귀 신고를 기다릴 것이다.) 최 함장을 비롯한 생존자들은 7일 오전 국군 의무사령부 수도병원에서 단체로 기자회견을 가졌다. 함장을 제외한 전원이 환자복을 입은 채였다. 어느 인터넷 신문의 기사는 그 때문에 “빈축을 샀다”고 지적했다. 이 신문은 네티즌들의 의견이라며 듣기에도 민망한 의혹, 비난, 추측을 그대로 전했다.

재생산되는 의혹 또 의혹

(극히 일부의) 네티즌들만 의심과 추측과 매도의 권리를 과시하는 것은 아니다. 국회의원들과 언론들의 태도도 표현의 차이를 빼면 전혀 덜하지 않다. 마흔여섯 명의 실종자 가운데 둘이 시신으로 돌아왔다. 나머지 마흔네 명은 여전히 생사불명이다.

이 절박하고 처절한 상황 속에서도 국회의원들은 추궁과 호통의 권리를 집요하게 챙기고 있다. 국민을 대신해 실종자 수색을 독려하고 진상을 규명하고 정부의 사태 수습 과정을 감시하면서 제대로 된 사후 대책을 이끌어내기 위한 노력이라고 믿고 싶다. 그런데 자신의 활약상을 과시하고 입증할 증거를 만드는 데 더 열심인 의원이 없지 않아 보인다.

언론들은 숱한 사람들의 판단과 추측을 전하는 형식으로 의혹을 증폭시키고 있다. 시시각각 진전된 기사를 내보내야 한다는 강박감 때문일 것이다. 취재욕심이야말로 ‘기자(記者)이기’의 제1조건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건 이해가 되는데 정확하고 정직한 보도에 대한 책임의식이 부족해 보이는 경우 또한 적지 않다.

실종자 수색과 구조에는 일분일초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실종자 가족은 말할 것도 없고, 국민 모두가 절박한 심정으로 신속한 구조를 다그쳤다. 당연한 요구다. 다만 하나 은연 중에 간과한 게 있었다. 차갑고 어두운 물속에 들어가 실종자 수색을 하고 구조를 해야 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국방부도, 해군 당국도 아닌 개개의 군인이라는 사실이다.

가족들이야 그럴 수밖에 없었지만 국회도, 언론도 차분히 기다려주는 법이 없었다. 거대한 압박의 분위기가 형성되었고 그에 밀려 구조대원들은 차가운 바닷속으로 뛰어들었다. 앞이 거의 보이지 않을 만큼 물이 탁했지만 그 때문에 주저할 상황은 아니었다. 물론 재촉을 안 했다고 해도 그들은 뛰어들었을 것이고 동료들을 구해내려 사력을 다했을 것이다.

실종자 찾은 후에 따지자

한주호 준위가 목숨을 잃고 나서야 국민들은 새삼스레 깨달았다. 구조대원들도 극한 상황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는 군인이라는 것을, 누구인가의 남편이고 아들이라는 것을, 자칫 잘못되면 죽을 수도 있는 ‘살아 숨쉬는 사람’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된 것이다. 이후 압박의 강도는 크게 완화되었다.

원인규명·사후수습과 관련한 시각, 인식에서도 유사한 추궁과 압박이 가해지고 있다. 온갖 추측에 대해 즉각적으로 해명해주지 못하면 곧바로 ‘의혹’이 되고 만다. 마치 거대한 국가적 음모가 진행 중인 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다. 실종자 대부분을 아직 찾지 못했는데, 선체 인양 작업도 이제 겨우 시작인데 ‘의혹’은 서해바다를 가득 채울 정도로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우리 사회처럼 국가 공조직에 대한 불신이 팽배한 곳이 이 세상에 또 있을까. 생존자 전원을 기자회견장에 내보내야 할 만큼 불신이 넘쳐나는 이곳이 과연 우리의 조국 맞는가. 답변자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새로운 의혹의 빌미가 되는 이런 기자회견의 의미는 또 무엇인가.

지금은 실종자 수색이 급선무다. 물어도 그 다음에 묻고, 의심을 하더라도 그 다음에 할 일이다. 우리의 아들들 수십 명이 차가운 바닷물 속에서 이미 유명을 달리했을 것 같아 가슴이 저려온다. 이럴 때일수록 한 마음이 되어 서로 위로하고 위로받고 해야 할 우리의 공동체 안에서 최소한의 신뢰조차 아주 실종된 것 같아 마음이 쓰려온다. 이건 아닌데, 정말 이건 아닌데….

이진곤 논설고문 경희대 (객원교수) jing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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