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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종 칼럼] 검찰, 업그레이드 계기 삼으라

[백화종 칼럼] 검찰, 업그레이드 계기 삼으라 기사의 사진

가장 유명한 민사 재판이 아이의 친어머니를 가리기 위한 솔로몬의 재판이라면, 가장 유명한 형사 재판은 미국의 미식축구 스타 O.J 심슨에 대한 그것이 아닐까 싶다. 많은 사람들이 심슨을 전처 등의 살인자로 믿어 의심치 않았으나 재판 결과는 무죄였다. 검사는 사건 현장에서 찾아낸 심슨의 DNA와 일치하는 혈흔이 묻어있는 장갑 등 많은 것들을 증거로 제시했다.

그러나 미국 최고의 변호사들로 꾸며진 ‘드림팀’은 그 장갑이 다른 사람의 것일 수도 있으며, 비록 1만분의 1의 확률일지라도 다른 사람끼리 DNA가 일치하는 경우가 있으므로 그 혈흔이 심슨의 것이라는 명백한 증거가 될 수 없다는 논리 등으로 (지금도 논란이 되고 있지만) 무죄 평결을 이끌어냈다.

범죄자에게 뒤통수 맞은 검찰

한명숙 전 총리의 수뢰 혐의에 대한 재판이 검찰을 곤혹스럽게 만들 수도 있겠다는 예감이 든 것은 3월 15일 공판 때였다. 한 전 총리에게 5만 달러를 줬다는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은 이날 공판에서 “검사님이 무섭고 생명의 위협을 느껴 돈을 주지 않았는데도 10만 달러를 줬다고 했다”는 등 검찰에서의 진술 내용을 바꾼 것이다.

예상대로 법원은 곽씨의 진술에 일관성, 합리성, 객관성이 부족하다며 한 전 총리의 무죄를 선고했다. 법원은 공개된 곳과 마찬가지인 총리공관에서 그 짧은 시간에 돈을 주고받을 수 있는지 의심이 간다는 입장과 함께 강압수사의 가능성 등도 지적했다. 검찰 측 기소 내용은 깡그리 부정하고 한 전 총리 측의 주장은 100% 수용한 것이다.

검찰은 곽씨가 일관되게 5만 달러를 줬다고 진술한 점, 한 전 총리와 곽씨의 각별한 관계 등 정황 증거들이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은 데 대해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언론은 법원보다는 검찰을 나무라고 있다. 검찰을 나무라는 언론 중 일부는 검찰이 처음부터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한 전 총리를 억지로 엮어 넣으려 했다고 주장하기도 하나, 더 많은 언론들은 수뢰 혐의의 실체적 진실 여하를 떠나 검찰이 부실하게 수사하고 무리하게 기소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물론 검찰 측 입장을 이해할 수 있는 측면이 전혀 없진 않다. 전직 총리에게 뇌물을 주었다는 진술을 확보하고도 이를 무시할 순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검찰은 한 전총리가 오는 6월 2일 지방선거의 유력한 제1야당 서울시장 후보라는 점 등에서 그가 법정에 섰을 때 몰고 올 정치적 파장을 충분히 고려했어야 했다. 그만큼 수사에 신중을 기하고 기소까지 하려면 움직일 수 없는 증거를 확보했어야만 했다.

심슨 재판 교훈 되새겨야

그런데도 분명한 물증을 확보하지 못한 검찰은 곽씨의 입에만 의존했다가 곽씨가 말을 바꾸자 낭패를 당하고 중요한 선거를 앞둔 정권에까지 부담을 안겨주고 말았다. 어찌 보면 대한민국의 최정예 수사검사들이 모였다는 서울중앙지검 특수부, 아니 대한민국 수재 집단인 검찰 전체가 곽씨의 장난에 당했다고 해도 할 말이 없게 됐다.

검찰은 이번 재판이 1심일 뿐으로 상급심에서 결과가 바뀔 수 있다고 기대하고 있다. 또 이와는 별개로 한 전 총리의 9억원 불법 정치자금 의혹에 대해서도 수사를 계속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수뢰 의혹의 경우, 새로운 증거가 제시되지 않는 한 상급심에서도 결과가 안 바뀔 것이라는 전망이 유력하다. 불법 정치자금 의혹의 경우도 검찰이 뇌물 의혹 사건 선고 하루 전에 갑자기 들고 나왔다는 점에서 검찰이 안 하기로 약속한 별건 수사 논란과 함께 여론이 호의적이지 않은 것 같다.

기자는 의혹의 실체적 진실을 알 수도 없을 뿐더러 그에 관한 추측을 말하고 싶지도 않다. 다만 지금은 수사기관이 우격다짐으로 사건을 처리할 수 있는 권위주의 시대가 아니며, O.J 심슨 재판에서 보듯 수사나 기소 내용에 1만분의 1이라도 허점이 있으면 낭패를 보는 시대임을 검찰에 상기시키고 싶다. 검찰이 이번 일을 수사 업그레이드의 계기로 삼는다면 그나마 수확이겠다.

전무이사 wjbae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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