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박현동] 공정위는 공정한가 기사의 사진

칼은 누가,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잘 쓰면 생명을 살리지만 잘못 쓰면 생사람 잡을 수도 있다. 독약도 잘 쓰면 약이 되고, 보약도 잘못 쓰면 독이 된다. 제도나 규정도 같다. 삼척동자도 아는 말을 꺼낸 것은 액화석유가스(LPG) 가격 담합 과징금 부과 과정과 이후에 진행돼온 공정거래위원회의 처신이 마뜩잖기 때문이다.

공정위는 지난해 12월 2일 LPG 가격을 담합했다는 이유로 6개 LPG 업체에 6689억원의 과징금 부과결정을 내렸다. 실제 부과된 과징금은 4903억원이다. 담합 사실을 감추기 위해 증거인멸까지 시도했다는 게 공정위 주장이다. 우리 경제는 수요과 공급에 의해 가격이 결정되는 시장주의가 핵심인데 담합은 이를 정면으로 부정한다. 공정위 발표가 진실이라면 LPG 업계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자본주의 경제발전의 원동력 중의 하나인 경쟁을 원천적으로 배제하고 시장경제의 훼방꾼이라는 측면에서도 단죄돼야 마땅하다.

하지만 뒷말이 무성하다. 앞서 언급한 대로 공정위가 LPG 업계의 담합사실을 발표한 것은 2009년 12월 2일. 정호열 공정위원장은 이보다 2개월 앞선 같은 해 10월 8일 국회 정무위 국정감사에서 “과징금 규모가 대략 1조원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정 위원장은 한 달여 뒤 또다시 과징금 액수를 언급했다. 그해 11월 13일 한 조찬모임에 참석, “언론에 보도된 1조원의 과징금 부과는 심사보고서상 있는 것이고 실제로는 차이가 날 수 있다”고 말했다.

과징금은 전원회의에서 결정된다. 그런데 전원회의는 12월 2일 열렸다. 전원회의가 열리기도 훨씬 전에 공정위 수장이 과징금 액수를 언급한 것이다. 재판이 열리기도 전에 판사가 형량을 밝힌 것이나 마찬가지다. 공정위는 1차 전원회의에 부의(附議)한 심사보고서엔 과징금 액수를 1조3000여억원으로 산정했다. 과징금이 조정될 수 있지만 어떻게 1조3000여억원이 6689억원으로 줄어든단 말인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과징금을 과도하게 산정했거나, 또는 잘못 산정했거나, 그렇지 않다면 봐 준 것으로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칼을 이렇게 휘둘러도 되는가.

또 공정위는 LPG 담합사실을 발표한 지 4개월이 훨씬 지난 현재까지 의결서를 보내지 않고 있다. 무슨 연유가 있는 것인가. 의결서 발송 기한과 관련한 법적 규정은 없다. 다만 공정위는 과징금 부과 후 40일 이내에 의결서를 발송토록 내부규정을 두고 있다. 물론 사안이 중대하고, 검토사항이 많을 경우 지연될 수 있다.

과징금을 부과받은 업체들은 의결서를 받은 후 60일 이내에 과징금을 납부해야 하고, 일시 납부가 어려울 때는 분납도 신청할 수 있다. 소송 여부도 의결서를 검토한 후 결정할 수 있다. 사실상 공정위 결정의 효력은 의결서가 업체에 도착해야 발동된다.

공정위는 ‘공정위와 로펌이 담합하고 있다’는 세간의 소문을 들은 적 있는가? 공정위가 거액의 과징금을 물리면, 업체들이 소송을 제기하고, 이 덕택에 로펌은 큰돈을 번다는 것이다. 공정위와 로펌이 악어와 악어새 관계에 있다는 이야기다. 이런 의혹은 공정위 출신 간부들이 대형 로펌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것에서 비롯된다.

LPG 업계를 두둔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경쟁을 촉진하고, 균형 있는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선 공정위 역할은 더 강화돼야 한다. 하지만 시장엔 의구심이 많다. ‘MB물가’라는 말이 있듯이 정부가 국민생활과 밀접한 통신료, 기름값 등을 잡아 여론을 유리하게 이끌려고 한다는 말도 나돈다. 공정위가 행여 이런 점을 의식해 ‘뭔가 보여줘야 한다’거나 ‘군기잡기식’ 정책을 동원했다가는 나라가 망조가 든다.

정치권의 포퓰리즘도 문제지만 정부의 포퓰리즘은 더 치명적 결과를 낳는다. 공정위가 정치를 한다는 말을 들어선 공정위의 발전도, 시장경제의 발전도 기할 수 없다. 공정위가 스스로 물어보고 스스로 답해야 한다. 그래야 시장의 의구심도 풀린다.

박현동 산업부장 hdpar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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