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말걸기] 애플=독이 든 사과? 기사의 사진

애플의 ‘아이폰’ 도입 여부를 검토하던 SK텔레콤 TF(태스크포스) 명칭은 ‘백설공주’였다. 이동통신사 입장에선 아이폰이 ‘독이 든 사과’였기 때문이다.



이통사들은 음성통화 매출이 한계에 이르면서 무선인터넷을 새로운 수익원으로 삼아 성장정체를 타개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아이폰은 일정 금액만 내면 무제한 무선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어 이통사 수익을 갉아먹을 수 있다. 여기에다 아이폰 단말기 보조금 지급과 홍보·광고·판매 부대비용 일체를 이통사가 부담해야 하는 것은 물론 제품 디스플레이나 광고 문구까지 일일이 간섭하는 ‘애플식’ 무리한 요구도 그동안 제조업체에 ‘갑’으로 군림했던 이통사로선 선뜻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었다.

결국 SK텔레콤 백설공주팀은 아이폰을 도입하지 않기로 결론을 내렸다. 반면 만년 2위에 머물던 KT는 ‘을사늑약’, ‘노예계약’이라는 비아냥까지 들어가며 아이폰을 들여왔다.

아이폰이 가져온 변화는 엄청나다. 아이폰은 지난해 11월 말 판매를 시작한 후 넉 달 만에 50만대 이상이 팔렸다. 굳건하던 1위 SK텔레콤의 아성은 흔들리고 있다. 세계 휴대전화 시장에서 노키아 뒤를 이어 2, 3위를 달리던 삼성전자, LG전자는 뒤늦게 스마트폰을 내놓고 애플을 따라잡기 위해 허둥대고 있다.

지난 3일 애플의 태블릿PC(휴대용 터치스크린PC) 아이패드가 미국 등에서 출시된 후 또 한 차례 아이패드발 폭풍이 휘몰아치고 있다. 아이폰이 출시 첫날 27만대가 팔린 반면 아이패드는 이보다 많은 30만대가 팔렸다. ‘애플빠’ 뿐만 아니라 얼리어답터들은 국내에서는 한글지원이 안 되는데도 아이패드를 공수해 들여오고 있다. 삼성전자는 아이폰과 아이패드에 낸드플래시를 지원, 이들 제품이 팔릴수록 반도체 매출이 늘지만 한편으론 이건희 회장의 말대로 “10년 안에 삼성의 대표 제품들이 모두 사라질 수 있다”는 위기감에 휩싸여 있다.

이를 지켜보면서 만시지탄(晩時之歎)의 아쉬움이 남는다. 8년여 전인 2002년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국제가전쇼(CES)에서 진대제 당시 삼성전자 디지털미디어 사장은 마이크로소프트(MS)의 빌 게이츠 회장과 한 무대에 올라 개인휴대단말기(PDA) ‘넥시오’를 선보였다. 5인치급 대형 컬러화면과 초고속 무선랜 기능, 64메가 메모리 등을 장착해 편리하게 인터넷을 이용하도록 한 삼성전자의 야심작이었다. 그해 8월 삼성전자 무선사업부는 휴대전화 기능에 팜(Palm) 운영체제(OS)를 장착한 첨단 스마트폰 ‘애니콜MITs’를 내놨다.

얼리어답들의 사랑을 받았음에도 이러한 스마트폰들은 60만∼100만원대 이상 고가인데다 밥그릇(무선인터넷 매출)을 지키려는 이통사들의 이기주의로 꽃을 피우지 못한 채 사그라져 갔다. 누구나 게임, 뉴스 등 콘텐츠를 자유롭게 올릴 수 있는 무궁무진한 상상력의 창고 앱스토어(콘텐츠 장터)를 운영하는 애플과 달리 폐쇄적이고 미약한 콘텐츠도 원인이었다.

IT강국인 우리나라가 모바일 후진국으로 순식간에 떨어진 데는 빗장을 걸어 잠근 정부도 한 술 거들었다. 국가적 낭비를 줄이자는 목적으로 이통사들이 모두 똑같은 한국형 무선인터넷 OS 표준규격인 ‘위피’(WiPi·Wireless Internet Platform for Interoperability)를 쓰도록 의무화했기 때문이다.

현 정부 들어선 IT산업을 지원하던 정보통신부마저 해체해버렸다. 애플에 뒤통수를 맞고서야 ‘한국형 스티브 잡스를 키운다’ ‘소프트웨어산업을 육성한다’고 요란을 떨고 있다. 하지만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IT분야에서 한국 정부는 여전히 ‘감놔라 배놔라’ 하며 업체 위에 군림하려 하고 있다. 이런 정부가 있는 한 한국이 다시 ‘모바일강국’으로 명예를 회복할지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이명희 산업부 차장 mhee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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