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서완석] 한국 스포츠맨의 성공 DNA 기사의 사진

1980년대 중반 수영, 빙상 종목 한국선수의 세계 제패는 요원해 보였다. 수영 한국 남자최고기록이 세계 여자기록보다 못한 종목이 허다했다. 수영계의 목표는 올림픽 메달이 아니라 8명이 겨루는 올림픽 A파이널에 진출하는 것이었다. 어떤 코치는 세계 정상급 선수의 경기비디오를 기자에게 보여주며 한국선수와는 영법부터 다르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수영·피겨 세계 제패 기적

그 즈음 뜻밖의 손님이 한국을 찾았다. 당시 미수교국이면서 피겨 최강국인 소련, 동독선수들이 시범 경기차 방한한 것. 공산권 선수들이 처음 방한했다는 스포츠사적 의미는 차치하더라도 피겨여왕 카타리나 비트(동독)를 비롯한 10여명의 선수가 펼친 연기는 환상 그 자체였다. 국내에 몇 명 있던 선수들과는 전혀 다른 스케이팅 기술과 연기. 문자로 표현 불가능한 것이 있다는 사실에 처음 직업적 회의마저 느껴졌다.

이제 솔직한 고백을 해야 될 것 같다. 당시 적어도 내가 기자생활할 때는 수영과 피겨스케이팅에서만큼은 세계 정상 등극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왜 수영과 피겨만큼은 안 될 것 같다고 생각했냐면 종목의 특성 때문이었다. 그냥 달리면 되는 육상과 글러브만 있으면 되는 격투기 종목과 달리 수영과 피겨는 특별한 시설이 필요했고 피겨의 경우 스케이팅 기술에다 음악과 안무라는 콘텐츠가 가미돼야 했다. 게다가 이들 종목은 백인들의 주력 종목이어서 당시 정상급에는 유색인들을 거의 찾아 볼 수 없었다.

그로부터 20여년이 흐르고 마침내 박태환이 2008년 베이징올림픽 수영 자유형 400m를 정복했을 때 금메달의 기쁨보다 안 될 것이란 예상이 보기 좋게 깨진 부끄러움이 솔직히 더 컸다. 그리고 이번 밴쿠버동계올림픽에서 김연아가 역대 최고의 기량을 뽐내며 여자 싱글 금메달을 따냈을 때는 부끄러움을 넘어 경쟁에 유독 강한 한국 선수만의 DNA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됐다.

한국스포츠가 기적을 자주 연출하는 이유를 식민통치의 아픈 역사적 배경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축구 야구 농구 등 서양 스포츠가 국내에 소개될 즈음 일본에 의한 국권찬탈이 이뤄진다. 일제의 암울한 시기, 스포츠는 일제에 대한 합법적 항거 수단이 된다. 젊은이들은 스포츠에서만큼은 절대 일본에 지려고 하지 않았다. 스포츠는 지덕체의 조화로운 인격함양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항거의 수단이었다. 또 다른 형태의 독립운동이었고 전쟁이었다. 반드시 이겨야만 하는 뚜렷한 목표의식과 어떤 고통도 이겨내는 엄청난 훈련량. 이 전통은 지금도 한국 스포츠 기저에 흐르며 선수들에게 면면이 전승되고 있는 것이다.

기죽지않고 당당한 G세대

하지만 비슷한 시기 피식민지배 아픔이 있는 나라가 우리만은 아니며 그들이 스포츠에서 우리 같은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점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지난 50년간 세계가 주목하는 경제적 급성장과 거기서 배태된 국민적 자신감이 또 다른 원인이 아닐까. 따라서 승리 또는 성공이라는 강한 동기부여, 엄청난 훈련량과 노력, 거기에 경제력에 기초한 국민적 자신감의 결과 특히 스포츠분야에서 엄청난 성과를 낸 것으로 보인다.

주목할 점은 이 같은 시대적 배경이 운동 선수뿐 아니라 젊은 세대 모두의 DNA에 똑같이 영향을 미친 점이다.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태어나 이른바 G세대로 이름 지어진 젊은이들은 확실히 기성세대와는 달라 보인다. 민주적이고 합리적인 교육을 받은 이들은 자신의 주장을 당당하고 적극적으로 표출한다. 여권이 뭔지도 모르고 10대를 보낸 기성세대와 달리 G세대는 배낭여행이다 유학이다 해서 세계를 제 집처럼 여긴다. 따라서 이들은 글로벌적 관점에서 세계정상에 대한 도전 욕구도 기성세대보다 강하다.

G세대는 기성관념에 기죽지 않고 자신을 마음껏 표현한다. 고통을 즐기는 방법도 안다. 동계올림픽에 첫 출전했어도 즐기듯 메달을 사냥하는가 하면 처음 대하는 기자회견에서도 전혀 주눅 들지 않고 제 할말을 다하는 것이다.

최근 청와대에서 G세대의 이 같은 특성에 주목하고 대통령과 비서관들이 토론을 벌였다는 보도는 흥미롭다. 젊은 세대의 특성을 국가 자산으로 여기고 향후 정책개발에 활용하라는 대통령의 지적도 신선하다. 그들이 앞으로 국제무대에서 펼칠 재능과 꿈은 올림픽 금메달 이상의 흥미로운 것이 될 지도 모른다.

서완석 부국장기자 wssu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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