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 옛 그림] (16) 사람 손은 쓸 데 없다 기사의 사진

비 오면 꽃 피고 바람 불면 꽃 진다. 피고 짐이 비바람에 달렸다. 물은 누굴 위해 흐르는가. 낙화와 유수에 교감이 있을 턱 없지만 시인은 기어코 사연을 만든다. ‘떨어지는 꽃은 뜻이 있어 흐르는 물에 안기건만/ 흐르는 물은 무정타, 그 꽃잎 흘려보내네.’



조선 후기를 소란스레 살다 간 미치광이 화가 최북의 적막한 그림 한 점이 있다. 이름 붙이기를 ‘공산무인도’다. 아무도 없는 텅 빈 초옥과 그 곁에 꽃망울 맺힌 키 큰 나무 두 그루, 그리고 수풀 사이로 흘러내리는 계곡물과 높지도 낮지도 않은 산등성이가 이 그림의 전부다. 붓질은 거칠고 서툴다. 꾸밈이 없어 적막하다.

눈길을 붙잡는 것은 화면 속에 휘갈긴 한 토막의 시다. ‘빈산에 사람 없어도/ 물 흐르고 꽃 피네(空山無人 水流花開).’ 소동파의 글을 옮겨온 최북의 속은 깊다. 산속에 사람 흔적 눈 씻고 봐도 없다. 그래도 물이 흐르고 꽃이 핀단다. 물과 꽃은 저들끼리 말 맞추지 않는다. 인간사에 두담두지 않은 채 흐르고 핀다.

꽃 피고 물 흐르는 풍경은 유정하거나 무정하지 않다. 시 짓고 그림 그리는 이 저 혼자 겨워할 따름이다. 스스로 그러해서 ‘자연(自然)’이다. 저 빈 산, 무엇이 아쉬워 사람 손길을 기다리겠는가.

손철주(미술칼럼니스트·학고재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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