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처 인사이드-이광형] ‘큰일났다 봄이 왔다’ 기사의 사진

얼마 전 만난 한 원로 화가가 목소리를 높였다. “사람들이 도대체 양심이 없어. 자기들끼리 다 해먹고 있으니 비집고 들어갈 틈이 있어야지. 보수와 진보 갈등? 그것도 그래요. 대화는커녕 서로 잘났다고 그러니 소통이 돼야지. 이래서야 미술계 발전이 있겠나. 쯧쯧.” 공공미술관장을 지내고 전업작가로 활동 중인 그는 “참 답답하다”고 혀를 찼다.

양심이 없다? 이건 미술계 최고 원로들이 모인 대한민국예술원 미술분과를 두고 한 말이다. 예술원 회원 대부분이 특정 지역 출신 인사들로 이뤄져 다른 지역 예술인은 회원 가입이 ‘하늘의 별따기’라는 것이다. 또 회원 자격 심사에서 한 명의 회원에게라도 밉보이면 회원이 되는 것 역시 꿈도 꾸지 못할 정도로 벽이 높다는 것이다.

이 원로 화가의 지적대로 예술원 미술분과 회원 24명 중 특정 지역 출신이 다소 편중돼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심각할 정도는 아니다. 또 김흥수 화백의 경우 특정 회원의 반대로 평생동안 회원이 되지 못했다는 얘기도 있었지만 정작 문제는 예술원이 대다수 예술인들로부터 질시의 대상이거나 외면 받고 있다는 점이다.

다음은 미술계 갈등 문제다. 이건 사상 초유의 ‘한 위원회 두 위원장’ 사태를 몰고 온 문화예술위원회를 두고 한 말이다. 김정헌 전 위원장이 준법 투쟁으로 출근한 날 오광수 위원장과의 대화는 없었다. 물론 마뜩지는 않았겠지만 미술계 선배인 오 위원장이 김 전 위원장에게 “자네 왔는가?”라고 미덕을 보일 수는 없었는지 안타까웠다는 얘기다.

두 위원장 사태가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인 만큼 오 위원장이나 김 전 위원장이 서로에게 딱히 할 말이 없기는 할 것이다. 김 전 위원장은 “법대로 하겠다”, 오 위원장은 “재판이 진행 중이니 지켜볼 뿐이다”라는 원칙만 되풀이했다. 하지만 자존심을 먹고 사는 예술인들이 정치적인 이유로 서로 등을 돌린 것은 안타까운 일이라는 것이다.

이 원로 화가는 국립현대미술관장을 두고도 쓴소리를 했다. 김윤수 전 관장 때는 민중미술 전시로 도배를 하더니 배순훈 관장 부임 이후로는 특정 대학 출신 작가들 전시로 채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또 기업 최고경영자(CEO) 출신의 배 관장이 법인화를 추진하며 돈 버는 미술관을 지향하지만 예술이란 게 경제논리로만 따질 것은 아니라는 지적이었다.

그러면서 이 원로 화가는 우리 미술계, 나아가 우리 문화예술계에 잘못된 일이 있으면 따끔하게 충고하는 어른이 없다고 토로했다. 혼자 외롭게 작업하는 화가의 특성상 다른 사람과 어울릴 줄 잘 모르다 보니 외골수가 되기 십상이고 융통성이 별로 없어 만인으로부터 존경받는 원로가 없다는 것이다.

얼마 전 부산에서 열린 화랑미술제 참가차 KTX 열차를 탔다. 미술계 원로들과 화랑 관계자들이 동석한 자리로, 열차 내에서 미술인 한젬마씨가 ‘아트 트레인 영상 강좌’를 진행했다. 국내 미술계뿐만 아니라 세계 미술계에서도 주목받고 있다며 자부심이 대단한 한 원로 화가는 강좌가 시작되자 신문을 가져달라고 요구했다.

이 원로 화가는 강의에는 한 번도 눈길을 주지 않고 신문으로 영상물을 가린 채 신문 읽기에만 몰두했다. 그러자 주변에서 수군거렸다. “한참 아래 후배가 열정적으로 준비한 강의인데 원로 선배가 격려도 좀 해주고 그러면 좋을 텐데…” “다 자신들이 잘난 맛에 사는 분들인데 새까만 후배의 강의가 어디 눈에 들어오기나 하겠어?”

두 원로 화가의 얘기는 선후배 사이에 돈독한 결의가 부족하고, 불평불만을 뒤에서만 늘어놓고, 대내외적으로 인정받는 어른이 없는 미술계의 현실을 보여주는 사례다. 지금 미술계는 울상이다. 원로 사진작가 황규태의 작품 ‘큰일났다 봄이왔다’처럼 봄이 왔지만 침체된 분위기 때문에 큰일이라고 한다. 툭하면 사상 최악의 상황이라고도 한다. 미술인들이 그토록 기다리는 봄은 언제나 올까.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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