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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박시형] 초등학생 비즈니스

[삶의 향기-박시형] 초등학생 비즈니스 기사의 사진

“그러면 그거 사기 아닌가요?”

“잘 모르시나본데, 한다하는 출판사는 이미 다 하는 겁니다.”

남자가 느글느글하게 웃는다. 명함을 다시 살펴본다. ‘책 홍보전문 사이트 ○○○ 대표’라는 글자가 큼지막하게 박혀 있다. 앞뒤로 금색 칠이 번쩍번쩍하다. 닮았다, 번들번들한 그의 얼굴과.

“그러니까, 지금까지 하신 건 초등학생 마케팅이구요. 저희가 하는 건 대학생 마케팅입니다.”

옆에 놓인 책을 던져버리고 싶다. 참는다. 대신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어젖히며 말했다. “그래요? 그럼 그냥 전 영원히 초등학생으로 남지요, 뭐!”

3년 전 일이다. 출판사라고 차려놓으니 잔칫집에 동네 개 몰려들듯 하루가 멀다고 이런 사람들이 찾아왔다. 자신들이 운영하는 홍보사이트와 제휴하면 무조건 책을 베스트셀러로 만들어 주겠다는 달콤한 제안과 함께. 덕분에 듣도 보도 못한 오만가지 ‘편법’을 알게 되었다. 20년 넘게 출판 일을 해왔지만 그 남자 말대로, 초등학생 맞다.

어디까지 정직할 것인가

하루에 몇 백 권씩 새 책이 쏟아져 나오는 출판계에서 쉽게 베스트셀러에 오를 수 있다는 것은 뿌리칠 수 없는 유혹이다. 그들 말대로 하면 돈도 적게 들고, 결과도 확실하다. 진입하기만 하면 베스트셀러의 프리미엄은 엄청나다. 그들은 그런 출판사들의 ‘간절한 약점’을 이용해 ‘잔꾀’를 고안해냈고, 수많은 독자와 정직한 출판사를 우롱하는 사기행각을 새로운 보검인 양 휘두르고 다닌다. 불행히도 그들은 지금도 성업 중이고, 쉽게 결과를 얻으려는 출판사와 공짜 책을 좋아하는 독자들이 조연으로 맹활약 중이다. 슬프다.

웬 출판계 이야기냐고 서둘러 고개 젓지 마시라! 어찌 비단 출판사만의 이야기겠는가! 이상한 것이, 남 한번 안 속이고 정직하게 살던 사람도 일단 비즈니스 세계에만 들어오면 뭐에 홀린 듯 정신줄을 놓는다. 멈칫거리는 초보자에겐 회사와 선임자의 강요가 자행된다. 그들은 그것도 ‘능력’이라고 부른다. 첨엔 꺼림칙해하던 사람도 진흙탕에 점점 빠지면서 서서히 심장들이 차갑게 굳어간다. 그리고 어느 순간 선임자가 되어 새로 진입한 초보자에게 똑같은 일을 강요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비극의 답습이다. 그들의 변명은 똑같다.

“먹고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

비즈니스의 최전선에 있는 경영자들은 두말해 무엇하랴! 정도경영을 외치던 사람들도 어느 순간 스스로를 합리화시키며 진흙탕에 훌러덩 몸을 던진다. ‘비즈니스라는 게 다 그렇지, 뭐!’

정말 그럴까? 눈을 감고 조용히 물으면, 최소한 내 안의 나는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는 것을. 길이 아니면 가지 말아야 한다. 누구보다 정직하라는 말도, 누구보다 고결하라는 얘기도 아니다. 정도를 걷는 것, 그것이 궁극적으로 ‘먹고 살 길’이기 때문이다. 편법과 술수에 능한 사람들이 잠시 성공한 것처럼 보여도 궁극에는 묵묵히 최선을 다한 사람들이 빛을 발하는 것을 보게 된다.

正道 마케팅이 최선

세상이 아무리 부당해도, 남들보다 더 많이 고민하고 더 많이 노력하면 된다. 처음엔 힘들지만, 나중엔 점점 더 쉬워진다. 신뢰가 쌓이고 경쟁력도 수십 배로 늘어난다. 우리 출판계에도 그런 분들이 많다. 달콤한 열매는 아껴두었다가 나중에 먹자.

최근 마케팅 경력자 면접을 봤다. 우리 회사는 그런 ‘대학생 마케팅’ 안한다고 했더니 “그럼, 무슨 수로 책을 팔아요?” 하며 슬그머니 이력서를 갖고 사라진다. 슬프다.

그런데 더 슬픈 일이 있다. 얼마 전 그 책 홍보사이트에 들어가 봤더니, 한 신규 회원이 이런 글을 남겼다.

“어머나! 지금까지 이런 게 있는지 몰라서 괜히 돈 주고 책 사봤잖아요.”

박시형(쌤앤파커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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