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성기철] ‘단호한 대응’이 의미하는 것 기사의 사진

김대중 정부 출범 첫해인 1998년. 당시 청와대 고위 관계자로부터 전해들은 비화 한 토막.



김 대통령은 그해 을지포커스렌즈 연습을 거치면서 국방부로부터 충격적인 브리핑을 들어야 했다. 국방부가 한반도에서의 여러 전쟁 시나리오를 대통령 앞에 내놓은 것이다. 김 대통령을 놀라게 한 것은 북한군이 남쪽을 향해 선제공격을 해올 경우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서 사흘 안에 최소 60만 명이 사망할 것이라는 내용.

당시 국방부는 대북 햇볕정책을 추구하는 김 대통령이 국방예산을 삭감하는 등 군을 약화시키지 않을까 염려돼 의도를 갖고 그런 브리핑을 했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청와대 측은 국방부 브리핑을 햇볕정책에 대한 군의 반발로 이해할 정도로 민감하게 받아들였다고 한다.

北 소행일 땐 행동으로 보여줘야

하지만 김 대통령은 이 브리핑을 햇볕정책을 다지는 데 활용했다. 60만명 사망 예측의 경우 당시로서는 군 대외비여서 대통령으로서도 공개적으로 거론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사석에서는 가끔 이 얘기를 하면서 어떤 이유로도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전해진다. 경제적으로 북을 꾸준히 도움으로써 전쟁을 포기토록 유도하고, 미국을 설득해 대북 공격 가능성을 잠재우자는 것이 햇볕정책의 요체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금강산 관광과 두 번의 남북정상회담으로 상징되는 햇볕정책은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서 빛을 잃었다. 북한 지원과 남북 경협을 ‘퍼주기’로 규정하며 대북 압박정책을 취했다. 북의 직간접적인 정상회담 제의도 마다하면서 북한 길들이기에 주력해 왔다.

금강산 관광이 중단된 지 오래고, 개성공단을 제외한 대부분의 남북 경협은 마비 상태다. 단순히 햇볕정책을 따르지 않은 결과물이라 규정하긴 어렵겠지만 천안함 침몰 사고는 우리한테 너무나 큰 충격이다. 46명의 국군장병이 귀한 목숨을 잃는 비통함을 겪어야 했다. 사고 원인은 아직도 미궁이다. 하지만 북한 개입으로 결론지어질 가능성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기회 있을 때마다 침몰 원인을 낱낱이 밝혀내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단호하게 대처할 것임을 천명하고 있다. 국가보위 책무를 지고 있는 국군 통수권자로서 당연한 발언이라 생각한다. 북의 소행으로 밝혀질 경우 대통령이 언급한 것처럼 말을 앞세우기보다 행동으로 단호하게 조치할 필요가 있다. 단호함이 행동으로 옮겨지지 않을 경우 북이 우리를 얕잡아 볼 수 있고, 우리 국민과 군이 무력감을 느끼게 될 가능성마저 있기 때문이다.

개성공단 철수, 북한 상선의 제주해협 항해 불허, 유엔안보리 회부를 통한 경제제재 강화 등을 우선 생각해 볼 수 있겠다. 경우에 따라서는 군사적 조치를 바라는 여론이 조성될 가능성도 있다. 그럴 경우 제한적이나마 대북 무력시위를 고려해 볼 수도 있겠다. 서해 NLL 주변에서의 해·공군 시위를 통해 북이 한 치라도 침범할 경우 가차 없이 공격하겠다는 의사표시를 해 봄직하다.

그런데 정치권 일각과 일부 보수언론이 무력응징을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어 조금은 걱정스럽다. 군사적 보복을 하라는 얘기인데 단견이라 생각된다. 일부 극우 인사들은 전쟁불사론까지 거론하고 있다. 무책임한 발상이다.

‘전쟁 불사론’은 위험한 발상

전쟁을 입에 올릴 때는 아닌 것 같다. 군사적 보복은 자칫 전쟁으로 이어지는 빌미가 될 수 있다. 전쟁을 각오해야 전쟁을 막을 수 있다는 논리는 일견 맞는 말 같지만 남침 전력이 있는 정권과 이마를 맞대고 있는 우리로서는 위험한 발상이다. 국지적이든 전면적이든 전쟁은 남북의 공도동망(共倒同亡)을 초래할 뿐이다. 누가 이기고 지고의 문제가 아니다. 전쟁에는 국군 장병의 또 다른 희생이 뒤따를 것이 분명하며, 일반 국민의 엄청난 인명 피해를 감수해야 한다. 수십년간 공들여 쌓아올린 세계 10위권 경제도 한순간에 망가져 버릴 것은 불문가지다.

비상한 상황이 조성되더라도 정부는, 그리고 군은 전쟁을 피하면서 북을 응징할 수 있는 지혜를 짜내야 한다. 천안함 피해 유가족들의 당부도 한번쯤 음미해 보기 바란다. “이명박 대통령이 밝힌 ‘단호한 조치’가 (북을 공격하는 식의) ‘동일한 방법’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성기철 편집국 부국장 kcs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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