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말 걸기-이영미] 목숨 값이 아니다 기사의 사진

의사자(義死者). 타인의 생명 등을 구하다가 목숨을 잃은 사람이다. 대신 의로운 일은 직무와 무관한 행위여야 한다. 소방관이 불 끄다 숨지면 순직이다. 군인이 교전 중 사망하면 전사자가 된다. 직업과 무관하게,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일을, 자발적으로 하다 희생됐을 때 의사자가 된다.

해군 천안함 실종자 수색을 돕고 돌아가다 침몰한 98금양호 선원 9명. 바다에 배를 띄운 어부의 본업은 고기를 낚는 일이다. 실종자를 찾기 위해 그물을 쳤을 때 98금양호가 본업과 무관한, 하지 않아도 좋을 일을, 자발적으로 했음은 명백하다. 만약 이타심의 순도가 의심된다면 금양호가 입게 될 경제적 손실을 따져보면 된다. 어획고에 따라 편차는 있지만 하루 쉬면 조업 손실은 1000만원 안팎이라고 한다. 선장 이하 선원은 어획량에 따라 월급을 받는다. 선원에게 조업일수는 곧 생계였다.

98금양호가 침몰한 지 26일. 수색 작업은 잠정 중단됐다. 선체 인양도 비용 문제로 기약이 없다. 생존 확률도, 시신 수습 가능성도 희박해졌다. 밥벌이를 접고, 생명까지 내놓았는데 98금양호에 의사자가 되는 길은 멀어 보인다. 현재까지 98금양호 희생자 9명 중 확인된 사망자는 김종평, 인도네시아 출신 람방 누르카효씨 두 명. 나머지 실종자 7명에 대한 보상은 1년을 기다려야 할 처지다. 민법상 실종자는 5년이 지나야 사망을 인정받는다. 선박 사고 등의 경우 기간은 1년으로 짧아진다. 이대로 시신을 못 찾으면 금양호 실종자는 내년 4월이 돼야 사망자가 된다. 의사자 신청은 그 이후에나 가능하다. 천안함 실종자 6명 처리는 일사천리였다. 산화자로 조만간 국가유공자 대우를 받는다.

인도네시아인 선원 문제는 더 혼란스러운 상황이다. 외국인에게 의사자 자격을 줄 수 있느냐는 논란 때문이다. 인천 중구청 담당자는 부정적이었다. 그는 “외국인은 의사자 자격이 없다고 들었다. 일단 누르카효씨는 제외하고 한국인만 신청키로 했다”고 말했다. 반면 보건복지부 측은 “신청이 들어오면 심사위원회에서 결정할 일”이라는 원칙적 입장이다.

‘의사상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에는 외국인 관련 규정이 없다. 지난 40년간 외국인의 신청도 없었다. 전례가 없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불가능한 건 아니다. 규정이 없으면 만들면 될 일이다. 기준은 그들이 그날 그곳에서 함께 작업했는지가 돼야 한다. 반증이 없는 한, 국적은 탈락 이유가 될 수 없다.

의사자 보상금은 목숨 값이 아니다. 죽음은 돈으로 무마되지 않는다. 국가가 의사자를 선정하고 보상금을 주는 데는 위무를 넘는 이유가 있다. 국가는 의사자 보상을 통해 이타심과 정의감, 인류애 같은 추상적 개념에 현실적이고 구체적 가치를 부여한다. 그리고 공동체 내에서 어떤 행위가 장려되고 기억돼야 하는지 보여준다. 의사자 배려는 ‘이타적 행동은 보상 받는다’는 국가적 메시지다.

“돈 권력 없으면 선의조차 보답 받지 못하는 나라” “나라차별 인간차별 굽이굽이 인간사 서러움” “한반도에서 약자로 산다는 것” “공항에 발 묶인 서양인에겐 그리 잘하더니” “이제 누가 남 일에 발 벗고 나서나”….

‘98금양호 인도네시아 두 선원의 흔적’을 다룬 지난 23일자 본보 기사에는 이런 댓글이 줄줄이 달렸다. 네티즌은 분노했다. 그들은 98금양호가 어떤 대우를 받았는지 목격했다. 이유도 알아챘다. 가진 것 없는 뱃사람에게, 말 안 통하는 동남아 노동자에게 정부와 언론 사회는 다같이 냉정했다.

98금양호 선원 9명에 대한 보상은 신속하게 이뤄져야 한다. 과정은 매끄러워야 한다. 왜 그래야 하는지 궁금한가. 그들의 묵살된 희생이 지금 우리 사회에 어떤 교훈을 던지고 있는지 귀 열고 들어볼 일이다. “힘 약하면 대통령도 안 불러주는구나.” 그중 하나였다는 사실도 기억해두면 좋겠다.

이영미 특집기획부차장 ym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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