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염성덕] 해군을 생각하며 기사의 사진

천안함 침몰로 순국한 46용사들을 국민의 가슴에 묻으면서 두 가지 생각이 기자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먼저 이라크에서 숨진 미군 챈스 펠프스 일병의 유해 운구와 장례절차를 다룬 영화 ‘챈스 일병의 귀환’(Taking Chance)이 머리에 떠올랐다. 이 영화는 유해 운구를 맡았던 미군 마이클 스트로블 중령이 겪은 일을 바탕으로 제작된 실화. 본국에 안주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에 자괴감을 느끼던 스트로블 중령은 전사자 명단에서 자신과 출신지가 같은 챈스 일병을 발견하고 그의 유해를 운구하기로 결심한다. 일면식도 없는 일병의 유해를 중령이 운구하는 것 자체가 이례적인 일이다.

미군 수송기에 실려 미 본토 공군기지에 도착한 챈스 일병의 유해는 피와 먼지로 범벅이 돼 있다. 영안실 요원들은 손톱 밑의 때까지 깨끗하게 유해를 씻어준다. 사랑하는 아기를 씻겨주는 어머니의 손길처럼. 챈스 일병의 몸에 꼭 맞게 재단한 제복도 입혀준다. 군복 바지는 연필을 깎아도 될 정도로 날이 서 있다. 공항 직원은 스트로블 중령이 유해 운구 요원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좌석을 1등석으로 올려준다. 항공기 여승무원은 아주 작은 십자가를 그에게 선물하고, 기장은 기내 방송을 통해 운구 사실을 승객들에게 알린다. 스트로블 중령은 항공기를 갈아타는 과정에서 챈스 일병의 관이 한데에서 하룻밤을 지내야 하는 상황이 되자 관 옆에서 노숙을 자청한다. 준비된 호텔의 편안한 잠자리까지 마다한다. 미군 당국은 챈스 일병의 부모가 이혼한 것을 알고 대형 성조기 2개를 준비해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전달한다. 그 주도면밀함에 입이 벌어질 정도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기자는 지지하지 않는다. 하지만 조국의 부름을 받아 전쟁터에 갔다가 산화한 장병의 유해를 거두는 미군 장병과 시민의 경건한 모습에서 감동이 묻어난다. 46용사를 보내면서 전국에 추모의 물결이 일었을 때 느낀 진한 감동과는 다른 잔잔한 감동이었지만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두 번째로 기자의 뇌리를 스친 것은 대양해군을 지향하다가 연안에서 참패했다는 식으로 해군을 질타하는 일부의 시각에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었다. 대양해군 건설은 해군의 숙원이었다. 1980년대 말이나 90년대 초반만 해도 해군이 대양에서 작전할 수 있는 거대한 군함을 건조하자고 건의할 때마다 당시 육군 출신의 군통수권자는 퇴짜를 놓았다고 한다. “이 돈이면 탱크를 몇 대나 만들 수 있느냐”는 식이었단다.

세월은 흘러 노무현 정권 시절 문무대왕함 왕건함 강감찬함 독도함 손원일함 정지함 등 대형함과 214급 잠수함이 진수됐다. 하지만 대부분의 군함은 김영삼 정부 때 기획하고 김대중 정부 때 재가를 받아 노 정권에서 진수식을 한 것이라고 해군 관계자는 말한다. YS 때 한·일 간에 독도영유권 갈등이 불거지자 대형함 건조계획이 탄력을 받았다는 것이다.

우리의 주적(主敵)이 북한이라는 데에 이의를 달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국가 방위를 위해서는 주적은 물론 잠재적인 적에 대해서도 방비를 해야 한다. 해군사관학교총동창회 홈페이지에는 주적과 잠재적인 적에 대한 다양한 대책들이 올라오고 있다. 대잠헬기와 소해헬기 구매사업을 조기에 집행하고, 북한산 철제 고기(잠수정)를 잡기 위해 어망을 이용한 전술개발을 고려하자는 제안부터 고속정에도 대잠탐지 장비를 장착하고, 대잠함 2척이 경비하는 이함경비(Dual Ship Patrol)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되고 있다.

3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우리 해군력은 대양해군과 연안해군의 합리적 발전을 통해 강화돼야 한다는 견해도 나오고 있다. 해군 전력을 확보하는 데는 20년 안팎의 긴 시일이 걸린다. 그만큼 장기적인 안목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독도 이어도(離於島)가 주변국 간에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고, 배타적 경제수역이나 동지나해 해상로를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대양해군으로의 행보를 늦출 수는 없다.

염성덕 사회부장 sdyu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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