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 옛 그림] (19) 덧없거나 황홀하거나 기사의 사진

양귀비꽃 피는 오월이다. 아름답기로 둘째가라면 투정할 꽃이 양귀비다. 모란이 ‘후덕한 미색’이라면 양귀비는 ‘치명적인 매력’이다. 그 고혹적인 자태는 쉽게 보기 어렵다. 함부로 키우다간 경을 친다. 열매에서 나오는 아편 때문이다. 무릇 아름다운 것은 독이 있다.



현재(玄齋) 심사정이 그린 양귀비가 이쁜 짓 한다. 낭창낭창한 허리를 살짝 비틀며 선홍색 낯빛을 여봐란 듯이 들이민다. 아래쪽 봉오리는 숫보기마냥 입술을 스스럽게 빼물었다. 벌과 나비는 만개한 꽃을 점찍어 날아든다. 그들은 용케 알아차린다. 저 꽃송이의 춘정이 활활 달아올랐음을. 날벌레와 꽃의 정분이 이토록 농염하다.



청춘남녀의 사랑인들 다르랴. 끌리고 홀리기는 마찬가지다. 김삿갓은 사랑의 인력(引力)을 두둔한다. ‘벌 나비가 청산을 넘을 때는 꽃을 피하기 어렵더라.’ 하여도 안타까움이 어찌 없을손가. 꽃은 열흘 붉기 어렵고 지기 쉽다. 양귀비의 꽃말 또한 ‘덧없는 사랑’이다.

고려 문인 이규보가 한숨짓는다. ‘꽃 심을 때 필까 걱정하고/ 꽃 필 때 질까 맘 졸이네/ 피고 짐이 다 시름겨우니/ 꽃 심는 즐거움 알 수 없어라’

나비는 꽃에서 꽃가루를 옮기고 벌은 꽃에서 꿀을 얻는다. 짧지만 황홀한 사랑이다. 사랑의 덧없음은 그저 인간사일 뿐, 독이 든 아름다움이기로서니 꽃을 탓하랴.

손철주(미술칼럼니스트·학고재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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