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말 걸기-손영옥] ‘노풍(盧風)’에 부치다 기사의 사진

경남 진영엔 감이 많구나…. 그가 몸을 던진 ‘부엉이 바위’를 끼고 정토원으로 올라가며 그런 생각을 했다. 산길 주변으로 감나무가 지천이었다. 감꽃 떨어진 나무엔 푸른 감이 영글고 있었다. 무수한 이들이 글을 남긴 노란색 리본들은 길을 따라 펄럭이며 울음을 삼키고 있었다.

봉하마을에 갔었다. 장례식이 끝나고 추모객 열기도 가라앉은 지난해 7월 초였다. ‘전직 대통령의 투신자살’이란 전대미문의 사건 앞에 혹자는 ‘국격(國格) 상실’을 운운하기도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꿈꾸는 세상을 만들려 부단히 실천했던 ‘인간 노무현’의 열정과 좌절 앞에서 망연자실했다. 거대한 슬픔이 전국을 덮쳤다.

그의 비극적 죽음을 계기로 ‘노풍(盧風)’이 새삼 대한민국을 강타했다. 그런데 노풍이 거세질수록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이 고개를 내밀기 시작했다. 도도한 추모 열기 속에 참여정부의 공과(功過)에 대한 시비는 설 자리를 잃었던 것이다. 노무현 정부가 실시했던 정책에 대한 냉철한 반성은 없었다. 친노 세력의 반성문 쓰기는 그렇게 어물쩍 넘어갔다.

참여정부에 왜 공만 있고 과는 없겠는가. 이미 지난 대선에서 국민들은 정권교체로 심판하지 않았던가. 그런 점에서 그 무렵 나온 ‘진보의 재구성을 위한 비판적 진단’이란 부제를 단 ‘노무현 시대의 좌절’(창비)은 의미 있는 책이다.

‘하늘이 두 쪽 나도 집값만은 잡겠다’고 공언했으나, 균형발전 명분하에 전국에 ‘삽질’을 함으로써 되레 땅값 상승을 부채질한 게 대표적 실패 사례다. 목표와 방법이 충돌하는 정책을 폈던 것이다. 소득과 부동산대출을 연계하는 ‘총부채상환비율(DTI)’은 집값 잡기 즉효처방이었으나, 너무 늦게 내놨다. 해외 사례가 있었는데도 말이다. 집값 안정의 과실은 지금의 이명박 정부가 따먹고 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 좌파 신자유주의 정책 추진으로 성장 열망에 사로잡힌 얼치기 분배주의자라는 비판도 쏟아졌다. 양극화는 심해졌고 비정규직은 늘었다. 어느 연구자는 “한마디로 실력이 없었다”고 매몰찬 평가를 내렸다.

친노 세력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재기를 꿈꾼다. 지난해 봄 노 전 대통령을 극단의 선택으로 내몰았던 정치자금 수사와 관련, 검찰이 저인망식으로 수사망을 넓혀오자 ‘폐족(廢族)의 위기’까지 느꼈다던 그들이다.

친노 세력은 ‘사람 사는 세상 2’란 밴드를 결성, 지난 8일부터 전국 순회 콘서트에 나섰다. 당초 지난달 26일로 예정됐었던 행사였으나 천안함 영결식 이후로 미뤘다. 천안함 정국이 잠잠해지자, 6·2 지방선거를 앞두고 ‘노풍이여, 다시 한번!’을 목청껏 외치기 시작한 것이다.

호사가들은 민주당과 친노 세력이 일으키는 ‘노풍’이, 한나라당과 정부가 천안함 침몰 사건을 계기로 조성한 ‘안보 바람’을 이겨낼 수 있을지 관심을 쏟는다. 하지만 정권의 ‘지속가능한 성장’은 바람 따위에 좌우될 게 아니다. 끊임없는 자성과 자기변신이 해답이다.

최근 치러진 영국 선거가 웅변한다. 경제 위기 해결에 무능했던 노동당을 유권자들은 외면했다. 보수당은 어떤가. 영국 보수당은 육아·환경을 이슈화해 강경보수를 중도보수로 탈바꿈시킴으로써 선거에서 제1당을 차지할 수 있었다. 거기까지였다. 여전히 엘리트주의자로 보이는 보수당에 서민들은 완전한 신뢰를 보내지 않았다. 보수당 혼자서 13년 노동당 정권을 끝장낼 수 있는 ‘과반 의석’을 주지 않은 것이다. 연정 해법이 복잡해지면서 보수당의 정권 탈환 여부는 안갯속이다. 케케묵은 안보 마케팅에 안주하는 한나라당이 새겨들을 일이다.

오는 23일로 노 전 대통령 서거 1주기를 맞는다. 거두절미한 슬픔과 추모가 아니라 진보의 지난 10년을 성찰하는 계기로 삼는 건 어떤가. 실력 없는 진보는 정권을 잡지 못하고, 정권을 잡아도 세상을 바꾸지 못한다. 슬프도록 새파랬던 진영의 단감이 생각나는 계절이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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