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석동 칼럼] ‘이 땅의 우익은 죽었는가’ 기사의 사진

“절대다수인 우파가 사상전쟁과 조직력에서 소수의 좌파에 밀리는 이유는…”

1988년 ‘현대공론’ 8월호에 도발적인 글 한 편이 실렸다. 한국학중앙연구원(당시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양동안 교수는 ‘이 땅의 우익은 죽었는가’ 제하의 글에서 우파 지식인들의 나태와 비겁성을 통렬하게 비판한 뒤 우파진영의 맹성을 촉구했다.

그때 양 교수는 “우익의 각성과 분발이 없으면 좌익이 나라를 지배하는 때가 반드시 온다”고 했다. 좌파가 연대해 세력을 확대하며 우파지배체제를 무너뜨리려 하는데도 우파세력이 속수무책 방관하는 것에 그는 비분강개했다. 머잖아 차례로, 좌익제휴 정권과 좌익이 주도하는 연합정권이, 궁극적으로 완전한 공산정권이 들어설 것이라는 경고였다.

그는 또 우파의 나라에서 좌파가 민주주의 민족주의 양심세력인 양 터 잡고 대학과 노동계에 이어 문화예술계 언론출판계 종교계 교육계, 심지어 관계와 법조계까지 모든 분야에 침투해 헤게모니를 장악했다고 개탄했다. 학계 언론계 정계 법조계 종교계의 속물적 리버럴리스트들과 일부 우익들도 여론을 교묘하게 오도하며 좌익을 돕고 있다고 맹비난했다.

‘도발’은 적잖은 파문을 일으켰고 수많은 지식인이 뭇매를 가했다. 전두환·노태우 신군부정권이 줄곧 범민주세력의 저항에 직면했던 시절이어서 나 역시 또 한 명의 기회주의 변절자가 너절하게 늘어놓은 자기방어겠거니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20년도 더 된 글을 장황하게 인용하는 것은 만에 하나 목적이 순백(純白)이지 않았더라도 그것이 이 시대의 예고편처럼 떠올랐기 때문이다.

6·25전쟁 후 1950년대 초부터 오랫 동안 남한은 보수우파가 절대다수를 점한 전통의 자유민주주의가 견고하게 뿌리내렸다. 불행하게도 결과만으로 보면 좌익제휴 정권(김영삼)과 좌익이 주도한 연합정권(김대중 노무현)은 양 교수가 예견했던 것과 비슷하게 역사가 됐다. 세계무대에서 오래 전 미아가 된 북한식 공산정권 꿈도 이 땅에 여전히 건재한다.

그 맥이 닿은 시대착오적 광경은 널브러져 있다. 2008년 허구의 ‘광우병 촛불’을 지펴 온 나라를 광풍 속에 몰아넣었던 좌파세력은 이제 태연히 지방선거 현장을 누빈다. 주요 지역 교육감선거전에서는 우파끼리 이전투구 중이다. 탈북자를 가장했던 황장엽 암살조가 검거되고 전교조 교사가 ‘반정부 선동’ 시험문제를 냈다는 소식에도 세상은 무덤덤하다.

우파가 압도적 다수임에도 소수의 좌파에 특히 사상전쟁과 조직력에서 밀리는 이유를 양 교수는 이렇게 정리했다. 흙은 안 묻히고 혜택만 향유하려는 습성, 난리 때 재산과 자녀를 해외도피시키는 비양심, 도덕적 우월성을 확보하지 못한 데 기인한 콤플렉스, 문제의식이 결여된 허약한 이론무장과 젊은 우파 양성 노력 부재, 독재정권의 하수인 전력에서 비롯된 호소력 빈약, 심한 분열.

100%는 아니지만 수긍이 가는 내용이다. 그의 주장은 용기있는 우파 지식인들이 전면에 나서야 하며 게으르고 비겁한 자들은 퇴장하라는 것이다. 사실 국가 위난 때마다 목숨 내놓고 앞장서는 인물들은 늘 정해져 있다. 좌파가 호국에 팔을 걷어붙이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좌파정권에 기생해 영화를 누렸던 우파 먹물 기회주의자는 또 얼마나 많은가.

좌파는 스스로 좌파라고 공언하지 않는다. 그들 중에 좌파를 자각하지 못하는 축도 꽤 있을 것이다. 여러 시련 가운데 현 정권은 이데올로기 측면에서 특별한 난관에 봉착해 있다. 명색이 우파 나라의 미래를 염려하는 것이다. 현실을 보면서 친북 종북(從北) 늪에 빠진 무리는 교화 척결 대상이지 공생의 대상이 못 된다. 국가 존망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지금은 좌파가 공권력의 통제 한계를 넘어섰고 곳곳이 덫이다. 자칫하면 낭패가 순식간에 올 것이다. 당장, 보수 진보로 고착된 어휘부터 우파 좌파로 정돈해야 한다. 보·혁, 보수·진보가 선악 또는 지성 비(非)지성을 가르듯 인식돼 온 것을 가치중립적으로 바로잡고, 진보는 좌파와 구별해야 마땅하다. 우파가 스스로를 ‘보수꼴통’으로 비하하고 비웃는 것보다 더한 비극이 있을까.

한석동 편집인 jerome7@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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