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정진영] 남유럽발 재정 위기의 교훈 기사의 사진

남유럽발 재정위기를 보는 우리 정부와 금융 당국의 스탠스는 분명하다. 이번 사태가 글로벌 금융위기로 확산되지는 않을 것이며, 특히 우리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는 것이다. 그 근거로 현재 재정위기의 직격탄을 맞고 있는 그리스를 비롯 포르투갈 스페인 등 주변 EU 국가들과 우리의 금융 거래 규모가 그다지 크지 않고, 우리의 재정 건전성이 이들 나라에 비해 훨씬 양호하다는 것이다. 외환보유액(4월말 현재 2789억 달러)도 사상 최대 규모라 걱정 없다는 주장이다. 오히려 이번 위기에 대해 지나치게 우려할 필요가 없으며 시장이 과도하게 반응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한마디로 ‘펀더멘털(기초)이 튼튼하니 걱정 말라’는 것이다. 시장에 긍정적인 시그널을 줌으로써 안정을 유지하고자 하는 당국의 노력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번 사태를 보는 정부와 금융 당국의 시각에 긴장감이 부족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은 지울 수 없다. 시장의 반응도 당국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긴급금융점검회의가 열린 다음 날인 지난 월요일(10일) 하루 주가가 급등하고 환율이 내렸지만 11일 시장은 냉담했다. 큰 폭은 아니었지만 주가는 내렸고, 환율은 올랐다.

정부가 상황인식을 너무 편하게 하는 건 아닌가 걱정스럽다. 금융시장의 글로벌 경제에 대한 노출도가 높은 현실을 간과한 게 아니냐는 것이다.

구태여 국제통화기금(IMF) 구제 금융 당시를 언급할 필요 없이 2008년 9월 발생한 세계적 투자은행인 리먼브러더스 파산 사태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긴장감 부족한 정부와 당국

158년의 역사를 자랑하던 리먼브러더스 파산 이후 외국자본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상태에서도 관료들은 예의 ‘펀더멘털’이 튼튼하고 외환보유액이 충분하다고 목청을 높였다. “우리나라의 외환보유액은 2000억 달러가 넘는다, 제2의 외환위기는 없다”고 자신만만했다. 불과 한 달여 만인 10월 말, 재정부 장관은 국회 국정감사에서 “다른 원인을 합치면 경우에 따라서는 외환위기 때보다 더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사실상 제2 외환위기를 자인한 셈이다. 리먼 충격은 우리 금융·외환시장을 뒤흔들었고 결국 미국과 300억 달러 규모의 통화 스와프를 통해 가까스로 곤경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급격한 자본유출에 따른 달러 고갈로 고전하다 그나마 국가 부도를 모면한 것은 미국과의 통화스와프가 체결됐기 때문이란 게 정확한 진단이다.

물론 그때와 지금의 사정은 또 다르다. 지금 우리 형편은 당국자의 단골 레퍼토리인 ‘펀더멘털’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이전에 비해 훨씬 강건하다. 그러나 기본만 믿고 낙관할 수만은 없다. 더욱이 ‘시장의 과민반응’이라고 치부하는 것은 과하다. 무엇보다 리먼 사태 이후 우리 정부의 대응이 치밀하지 못한 점은 뼈저리게 반성해야 한다. 대표적인 것이 과도한 대외 변동성에 대한 준비 부족이다.

리먼 사태 후 과감한 재정확대와 통화완화로 주요 국가 중 가장 성공적으로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회복됐지만 우리 경제의 가장 취약점 중의 하나인 급격한 대외 변동성에는 여전히 속수무책이다.

지난 주말 정부와 금융 당국이 긴급 회의를 가진 것도 따지고 보면 대외변동성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리먼 사태 때의 아픈 기억이 상흔으로 남아 있다는 얘기다. 리먼 사태 이후 1년 8개월여가 지났지만 여전히 밀물처럼 밀려들어온 외국자본이 다시 썰물처럼 빠져나가 환율이 치솟을지라도 이를 제어할 마땅한 방책이 없다. 지난 7일 사상 최대 규모인 1조2000여억원의 주식을 파는 등 외국인의 ‘셀 코리아’ 흐름은 우리 시장에 치명적인 악재다.

구체적 대안으로 신뢰 줘야

이번 유럽 재정위기 사태로 분명해진 것은 정부가 외환유출입의 변동을 줄일 방도가 필요하다는 말만 되뇌었을 뿐 구체적인 대안을 하나도 마련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정부는 IMF 구제금융과 리먼 사태, 그리고 남유럽발 재정위기는 확실히 다르다고 역설하고 있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다. 정부에 대한 신뢰를 시장에서 확인시켜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정부의 대응이야말로 시장에 대한 ‘과민반응’으로 간주될 수밖에 없다.

정진영 편집국 부국장 jyj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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