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포럼-이경숙] 현대 가정의 일그러진 자화상 기사의 사진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더니 어느새 녹색 세상이 되어 여기저기 펼쳐진 신록이 싱그럽다. 이렇게 따뜻하고 푸른 5월은 어린이날, 어버이날, 부부의 날까지 있어 잊고 지내던 가정의 소중함을 느끼게 해주는 ‘가정의 달’이기도 하다.

얼마 전 가정의 달에 즈음해 개봉한 한 편의 영화가 좋은 평가를 받은 적이 있다. 미식축구 스타플레이어 출신인 ‘로렌스 테일러’의 실화를 담은 ‘블라인드 사이드’라는 영화가 그것이다. 영화는 흑인인 주인공이 어린 시절 약물 중독에 빠진 친엄마와 강제로 헤어진 후 여러 가정을 전전하며 방황하다가 따뜻한 백인가정을 만나 자신의 숨은 가능성을 바라봐주고 감싸주는 가족들 덕분에 훌륭한 미식축구 선수로 성장하게 된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영화를 접하고 우리 사회에서 ‘가정’의 현주소는 어디쯤인지 생각해보았다. 많은 사람들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으로 망설임 없이 자신의 ‘가정’을 꼽을 것이나, 실제로 오늘날 젊은 세대들이 꾸려나가는 ‘가정’의 현주소는 그리 긍정적이지 않다.

맞벌이 보편화로 대화 단절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IMF 사태와 금융위기 등 경제전반의 어려움으로 인해, 또는 여성의 사회진출이 보다 활발해짐에 따라, 맞벌이 가정이 점차 보편화되어가고 있다. 이로 인해 조부모나 탁아소, 유아원 등 보육시설에 맡겨져 대부분의 시간을 부모와 접촉할 수 있는 기회를 잃은 채 성장하고 있는 아이들이 증가하고 있고, 아예 아이를 낳지 않는 가정도 크게 늘고 있다. 또한 부모와 자녀 간의 대화가 단절되어 건전한 가족문화의 공유도 어려워지고 있다.

특히 어머니보다 아버지가 자녀들과 거리감을 많이 느낀다. 한 포털 사이트에서 20∼30대 대학생과 직장인 65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결과를 보면 아버지와 대화가 아예 없거나 하루에 10분 미만으로 대화한다는 응답자가 62%에 이르렀다. 이러한 가정의 위기는 개별적인 차원이 아닌, 사회적으로 함께 고민하여 해결책을 내놓고 지원해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라는 말처럼 우리 국민 개개인이 가정 안에서 심리적 위안을 얻고 그들의 자녀들이 가정 안에서 정서적 안정을 갖고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은 매우 근원적이고 시급한 문제이다.

다행히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은 이미 시작되었다. 얼마 전 한 매체에서 이러한 여건을 개선하기 위해 ‘좋은 아버지 되기’를 장려하고 있는 기업체들을 소개했다. 기사에서 언급된 기업들은 직원들에게 ‘오로지 업무에만 올인하라’고 강요해서는 더 이상 경쟁력을 갖추기 힘들다는 것을 깨닫고 직원들이 가정을 돌볼 수 있는 여유를 제공해 높은 생산성을 얻어내고 있었다.

실제 이들 외의 몇몇 회사들도 ‘가정의 날’ 또는 ‘자기계발의 날’을 시행하고 유연근무제를 시범적으로 도입하는 등 가정을 돌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고 있다. 이는 직원들을 위한 복지정책일 뿐만 아니라 회사의 생산력과 직원들의 충성도를 높이는 상생의 좋은 사례라 할 수 있다.

사회 각 주체 공동노력해야

더불어 가정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기업, 가정 구성원의 합심이 필요하다. 먼저 정부에서는 가정과 일터의 조화를 위해 다양한 복지시설 확충과 제도 마련에 힘써야 하며 기업에서는 정부정책에 따라 직원들의 가정을 보듬을 수 있는 환경을 보다 적극적으로 만들어나가야 할 것이다.

가족 구성원의 노력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 아버지는 권위적 틀에 얽매이지 말고 좀더 친근하게 자녀들에게 다가서야 하며 자녀양육 문제도 어느 한쪽이 짐을 질 게 아니라 부부가 함께 대화를 통해 다뤄나가야 한다. ‘가정의 회복’이라는 화두를 우리 사회가 함께 고민하고 해결해나가야 할 때다.

이경숙(한국장학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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