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 옛 그림] (20) 나무랄 수 없는 실례 기사의 사진

거나해진 노인이 몸을 못 가눈다. 소나무에 기댔지만 한 발이 휘청거리고 눈이 아예 감겼다. 가관인 건 갓 모양이다. 오는 길에 냅다 담벼락을 박았는지 모자가 찌그러졌고 챙이 뒤틀렸다. 망건 아래 머리칼이 삐져나오고, 귀밑털과 수염은 수세미다. 취객의 꼬락서니가 민망하기보다 우스꽝스럽다.

이 노인, 그래도 입성은 변변하다. 넓은 소매와 곧은 끝자락에 옆트임한 중치막을 걸쳤다. 이로 보건대 신분은 틀림없이 사인(士人)이렷다. 겨드랑이에 낀 지팡이는 매무새가 날렵하고 손잡이 장식에 멋 부린 티가 난다. 무늬를 넣은 갓신도 태깔이 곱다. 아무래도 모지락스런 파락호는 아닐성싶은데, 웬일로 벌건 대낮에 억병으로 취했을까.

지금 그는 느슨해진 고의 띠를 여미고 있다. 무슨 수상쩍은 짓인가. 아, 안 봐도 알겠다. 소나무 둥치에 소피 한방 시원하게 갈겼구나. 꽉 찬 방광을 비운 후련함이 입가에 흐뭇하게 남아있다. 마침 보는 눈 없기에 망정이지 들켰다면 양반 처신 쌍될 뻔했다. 18세기 어름 평양 출신 오명현이 그린 속화가 이토록 생생하다.

이 그림은 추저분하지 않다. 외려 정겹다. 지나는 이도 늙은 양반의 실례를 살짝 고개 돌려 못 본 척 해줄 것 같다. 그것이 넉살과 익살로 눙치는 조선의 톨레랑스다. 무얼 봐서 용서하라고? 코 대고 맡아봐라. 지린내가 안 난다.

손철주(미술칼럼니스트·학고재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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