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박정태] 노무현에게 안식을 許하라 기사의 사진

그날은 토요일이었다. 한가로운 오전, 휴대전화 벨이 울렸다. “… 투신했답니다. 확인은 아직 안되는데요.” 회사에서 근무하던 후배의 다급한 전화였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도대체 말이 되는 얘긴지…. 어안이 벙벙했다. 믿기지 않았다. 얼른 TV를 켰다. 자막으로 ‘긴급’ ‘속보’란 타이틀 아래 한 줄짜리 뉴스가 계속 돌아갔다. 회사에 도착하니 호외가 제작 중이었다. 윤전기가 돌아갔다. 대한민국 현대사의 또 다른 비극이 담긴 호외는 곳곳에 뿌려졌다. 국민들은 충격에 빠졌다. 눈물, 통곡, 슬픔, 절망, 분노…. 이어지는 500만 추모 인파. 그리고 ‘아주 작은 비석’ 하나.

그로부터 1년.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주년 추도식이 23일 경남 김해 봉하마을 묘역에서 엄수됐다. 시민들의 절절한 추모 글이 새겨진 박석(薄石) 묘역도 일반인에게 개방돼 참배객을 맞았다. 아픔, 회한, 그리움, 상실감, 그리고 다짐. 비가 오는 궂은 날씨에도 줄을 이은 참배객은 노무현의 정신과 가치를 논했다.

대통령 노무현과 참여정부 공과에 대해 제대로 된 평가가 나오기에는 아직 이르다. 그의 사후에도 여전히 친노(親盧)와 반노(反盧)로 갈린 현실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현재 논쟁 중이지만 훗날 역사의 몫이다. 그렇다고 ‘사람 사는 세상’을 꿈꾼 ‘바보 노무현’의 정신마저 평가절하할 이유는 없다. 원칙과 상식을 중시하며 반칙과 특권을 거부한 정신이나, 서민과 소외층을 대변해 온 삶의 궤적은 많은 이에게 각인돼 있다. 노무현재단 상임이사 문재인 변호사는 최근 몇몇 인터뷰에서 “결코 현실에 굴하지 않는 이상주의자” “원칙주의자”라고 평했다.

대통령으로서는 민심을 얻지 못했다. 불행한 대통령이었다. 기득권층과의 싸움에서 패배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이해관계가 직결돼 있는 시장분배(조세·복지)와 부동산 정책 분야가 최대 격전장이었다. 임기 막판, 강력한 유동성 규제를 통해 집값은 잡긴 했지만 이미 부동산 가격이 폭등한 상황이라 중산층마저도 외면했다. 정책 방향은 틀리지 않았으나 방법론이 미숙하고 어설펐다. 스스로도 “대통령으로서 성공하지 못했다. 국민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리고 이렇게 회고한다. “대통령을 하려고 한 것이 분수에 넘치는 욕심이었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바꾼 지도자가 되려고 한 것이 나의 역량을 넘어서는 일이었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 세상을 조금이라도 바꾸었다고 믿었는데, 돌아보니 원래 있던 그대로 돌아가 있었다. 정말로 세상을 바꾸는,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드는 길이 다른 데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운명이다’)

고인은 ‘노무현을 버려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6·2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이 망자를 들쑤시고 있다. 여야 모두 주판알 튕기기에 여념이 없다. ‘노풍(盧風)’ 차단을 위해 ‘현 정권 대 전 정권’의 대결 구도로 몰아가려는 여권의 전략은 한심스럽다. 지난 대통령선거를 통해 심판받은 구(舊) 정권을 다시 심판하자고 하는 게 우스울 뿐이다. 그것도 집권 2년이 지나 반환점을 앞두고서. 풀뿌리 민주주의를 위한 지방선거의 본질과도 상관없다. 젊은 층을 중심으로 ‘노풍’이 폭풍이 되길 기대하며 은근히 세몰이를 하려는 야권의 태도도 바람직하지 않다. 이미 정책 선거는 실종됐다. 비이성적 차원의 이념대결만 난무한다. 천안함 조사 결과에 따른 ‘북풍(北風) 몰이’도 물론 경계 대상이다.

죽은 노무현을 둘러싸고 정략이 판치는 세상이다. 그것이 정치권의 현실이라고 주장한다면 우리에겐 비전이 없다. 망자를 정치적 선전도구로 악용하고 있는 정치인들은 노무현을 놓아줘야 한다. 순수하게 그를 기리고 노래하는 일반 시민들로 충분하다.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서거 1주년을 계기로 이제 그가 영원한 안식을 취하도록 해주자. 힘들었을 테니까.

박정태특집기획부장 jtpar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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