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 옛 그림] (21) 숨은 사람 숨게 하라 기사의 사진

18세기 화원 장득만(張得萬)이 그린 ‘아이에게 묻다’는 채색이 곱고 구도가 단정하다. 정조가 즐겨 본 화첩 속에 있는 그림이다.

바자울 둘러싸인 시골집은 단출한데, 문간에 선 소나무가 멋지게 휘었다. 마당 쓸던 아이가 손님을 맞아 저 먼 산을 가리킨다. 높은 산 아랫도리는 온통 뭉게구름이다.

이 그림은 당나라 가도의 시를 그대로 옮겼다. ‘소나무 아래서 아이에게 물으니/ 스승은 약초 캐러 갔다 하네/ 산속에 들어가긴 했지만/ 구름 깊어 있는 곳을 모르네’

가도의 읊조림은 싱겁다. 그래서 어쩌라는 말인가. 손님에게 발길을 돌리라는 건지 따라가 보라는 건지, 똑 부러지게 청하지 않는다.

은자의 처신은 미루어 알겠다. 그림자는 산을 벗어나지 않고 자취는 속세에 남지 않는다. 눈을 밟아도 발자국이 없어야 참된 은자다.

가뭇없는 족적을 구태여 더듬는 짓이 얄망궂기는 하되, 뱀뱀이 높은 스승에게 한 소식 듣고자 함은 세속인의 욕구다. 하여 또 다른 시인 시견오는 기어이 산에 들어가 본 모양이다.

그의 시가 이렇다. ‘길 끊긴 숲이라 물을 곳이 없고/ 그윽한 산은 이름마저 몰라라/ 솔 앞에 나막신 한 짝 주워 들고서/ 비로소 알았네, 그분이 이 길로 가신 것을’

사람들아, 숨은 이는 숨게 하고 간 이는 가게 하자. 사라져 그립거들랑 솔바람조차 그분인양 여기자.

손철주(미술칼럼니스트·학고재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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