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말 걸기-이명희] 정주영의 꿈 기사의 사진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자서전 ‘이 땅에 태어나서’ 서문에서 “나에게 서산농장의 의미는, 수치로 나타나는, 혹은 시야(視野)를 압도하는 면적에 있지 않다. 서산농장은 그 옛날 손톱이 닳아 없어질 정도로 돌밭을 일궈 한뼘 한뼘 농토를 만들어가며 고생하셨던 내 아버님 인생에 꼭 바치고 싶었던, 이 아들의 때늦은 선물이다”고 썼다.

아버지가 소 판 돈 70원을 훔쳐 고향 통천을 등진 정 명예회장은 아버지에게 빚을 갚는 심정으로 서산농장을 일궜고 그 땅에서 키운 소 500마리를 이끌고 1998년 6월 16일 판문점을 넘었다. 소를 실은 50대의 트럭이 판문점을 넘는 이 한편의 드라마를 전 세계는 벅찬 감동으로 지켜봤다. 그해 11월에는 금강산 관광선 금강호가 첫 출항을 했다.

2000년 현대그룹의 모태인 현대건설이 유동성 위기를 겪을 때도 현대가(家)에게 금강산관광 사업은 놓을 수 없는 유업(遺業)이었다. 수익을 추구하는 기업 속성으로 보면 수년간 적자를 내는 금강산관광 사업은 포기해야 하지만 현대는 그러지 않았다.

당시 협상차 북한을 왔다갔다하던 현대아산 임원들은 “합의서에 사인해 놓고도 그걸 다시 원점으로 되돌리는 북한을 보면 같이 대동강 물에 확 뛰어들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고 토로하곤 했다. 김윤규 당시 현대아산 사장은 “금강산에서 골프 치며 해수욕할 날이 멀지 않았다”고 호언했지만 ‘양치기 소년’이 되기 일쑤였다. 그만큼 북한이 50년간 꽉 닫혔던 빗장을 여는 속도는 더뎠다.

수년이 걸리긴 했지만 김 사장 말대로 군사분계선을 넘어 당일로 금강산 육로관광을 다녀올 수 있게 됐고 금강산엔 골프장과 해수욕장도 들어섰다. 2000년 8월 개성공단개발 합의서 체결 후 2004년 12월 개성공단에선 우리 자본과 북한 노동력이 합쳐진 첫 제품이 생산됐다.

북한의 핵실험 등 간헐적인 도발적 행동들 속에서도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 사업이 명맥을 유지해온 데는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의 햇볕 정책과 현대그룹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대북 퍼주기’라는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햇볕정책이 ‘코리안리스크’를 불식시켜 지난 10년간 우리 경제가 세계 10위권을 넘볼 정도로 급성장하는 데 일조한 것도 사실이다. 한국 시장에 들어와 있는 외국 투자자들은 웬만한 북한발 악재에는 꿈쩍도 안하는 맷집이 생겼다. 안보 걱정 없이 경제에 매진할 수 있었던 덕에 G20 국가들과도 어깨를 견줄 수 있게 됐다. 국민들은 지난 10년간 북한이 전쟁을 일으키지나 않을까 걱정하지 않아도 됐다.

이런 모든 것들이 물거품이 되려 하고 있다. 남북관계 경색은 금강산 관광객을 총으로 쏴 숨지게 하고도 사과와 재발 방지책을 내놓지 않은 북한에 일차적 책임이 있다. 하지만 달러 고갈로 벼랑 끝까지 몰린 북한이 지난해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을 통해 손을 내밀었을 때 그 손을 잡아주지 않은 우리 정부 책임은 전혀 없는 걸까.

남북 간 대결 국면이 계속되면서 결국 한반도는 일촉즉발의 위기에 놓였다. 자식을 군대에 보낸 부모는 물론 국민 모두가 ‘전쟁’이란 단어를 다시 떠올리며 불안해하는 상황이 돼 버렸다. 코리안리스크가 부각되면서 외국 자본이 빠져나가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나온다. 시계는 정확히 20여년 전 냉전시대로 돌아가 있다.

정부를 믿고 금강산과 개성공단에 투자했던 기업들은 수년 공든 탑이 무너지려는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누굴 붙잡고 하소연해야 할까. 정부를 대신해 한반도에 평화 토대를 쌓으며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의 자살까지 겪어야 했던 현대는 ‘투자 판단 실수’였다고 혼자 떠안고 가야 하나.

미안한 마음에서일까, 말년 휠체어에 의지해 현대 계동사옥 이발관을 찾곤 했던 정 명예회장의 뒷모습이 자꾸만 떠오르는 요즘이다.

이명희 산업부 차장 mhee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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