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석동 칼럼] 짐을 챙기며 기사의 사진

“애독자님과 이웃들에게 하나님의 평강이 넘치시기를 기도합니다”

저는 이제 기자생활을 접습니다. 이 칼럼은 국민일보 가족으로서 제가 쓰는 마지막 기사이기도 합니다. 중간에 잠깐 외출했던 시간을 합쳐 근 32년을 일했으니 할 만큼 한 셈이지요. 올 것은 온다는 지극히 초보적인 상식을 새로 체험하고 있습니다. 사실은 정년퇴임까지 완주하는 것만으로도 큰 축복입니다.



“너는 내 것이라.” 순서로 고마움을 표하자면 당연히 하나님이 먼저입니다. 저, 혹은 우리 모두는 그분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정년퇴임은 그 주님이 매기시는 세월의 무게이자 훈장일 것입니다. 저의 퇴임은 가장 아름다울 때 떠나라는 하나님의 명령이라고 받아들입니다. 이것은 또 하나의 축복이며, 제가 감당할 또 다른 사명의 분깃을 아직 남겨놓으셨다면 그 일도 인도해주실 것입니다.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며, 한 날의 괴로움은 그날로 족하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막연하게 앞날에 대한 염려가 아주 없지는 않습니다. 보통의 삶이란 늘 그러하므로 불현듯 비장감이 드는 것은 아닙니다만, 날마다 유서를 쓰는 마음가짐은 누구에게나 필요할 것도 같습니다. 자신의 능력으로는 한 치 앞을 내다볼 줄 모르는 것이 인생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뒤에 오는 사람을 위해서라도 퇴장은 자연스럽고 필요한 것입니다. 만남과 헤어짐을 되풀이하다 끝나는 것이 인생여정이니 또한 어쩌겠습니까. 오래도록 저는 원숙하고 인자하신 교장 선생님 같은 분들에게나 정년퇴임이 있는 것으로 여겼습니다. 홀가분해진 마음 한편에 허전함이 묻어있는 것은 그래서이지 싶습니다.

오늘 크게 인사를 올려야 할 분이 많이 계십니다. 따뜻한 관심과 격려의 말씀으로 저를 꾸준히 질책해주신 애독자님들 참으로 고마웠습니다. 저의 우직하고 투박한 글 때문에 상처받았을 분들에게도 특별히 용서를 구합니다. 유쾌하지 않은 일로 인해 저의 칼럼 속 인물이 되셨던 분들에게는 더욱 그렇습니다.

항상 좋은 말만 골라서 하지 못한 것은 일차적으로 사랑하는 마음이 부족했기 때문임을 고백합니다. 변명입니다만, 발전을 논의하려는 데서 비판과 험담을 배제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가뜩이나 허물 많고 지혜가 부족한데다 저널리즘 종사자로서 세상만사를 사랑으로 감싸 안는 것은 현실적으로도 쉽지 않았습니다.

이따금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을 떠올렸지만 스스로 선택했던 길을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아쉬움은 기자생활을 시작한 이후 제대로 자신을 뒤돌아본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세속적 기준으로 짚어보면 지나온 삶의 궤적이 형편없이 밑진 것 같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너무 몰랐고 잃은 것도 많아 마음이 휑해질 때가 있습니다. 물론 다 제 탓입니다.

어느 직종에서든 계급장을 반납할 시간은 반드시 오게 돼 있습니다. 기자 계급장을 떼고 난 뒤 평안이 한결같으면 참 좋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저의 것으로 저를 더 채우기를 삼가야 한다는 것을 압니다. 그런 연후에 온전한 기도와 간구로 주님께서 제 안에 들어오시게 하는 것이 길임을 새삼 깨닫습니다.

고 장영희 서강대 교수님의 유고 산문집 ‘이 아침 축복처럼 꽃비가’(샘터)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디다. 나이 들어 고국으로 돌아간 어느 필리핀 신부님한테서 인터넷에 떠도는 것이라며 들었다는 ‘내가 이제야 깨닫는 것은’의 내용 일부입니다.

“내가 이제야 깨닫는 것은… 삶은 두루마리 화장지 같아서 끝으로 갈수록 더욱 빨리 사라진다, 하나님도 여러 날 걸릴 일을 우리는 하루에 하려 든다.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것은 시간이 아니라 사랑이다. 모두 산꼭대기에서 살고 싶어 하지만 행복은 그 산을 올라갈 때다… ”

그리고 신부님은 물었습니다. 왜 우리는 삶을 다 살고 나서야 이 모든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일까. 살아온 길을 되돌아보면 너무나 쉽고 간단한데, 진정한 삶은 늘 해답이 뻔한데, 왜 우리는 그렇게 복잡하고 힘들게 살아가는 것일까.

편집인 jerome7@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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