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포럼-홍덕률] 두 젊은이의 일탈이 주는 교훈 기사의 사진

요즘 몇몇 사건들로 우리 사회의 청년들에 대한 걱정이 크다. 어머니뻘의 학교 미화원에게 막말을 퍼부어댄 경희대 패륜녀 사건과 만삭의 임신부 배를 걷어차 공분을 자아낸 소위 발길질녀 사건이 대표적이다. 실로 참담하고 부끄러운 사건들이다.

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두 사건이 극히 예외적이거나 우연적인 것이 아닐 수 있다는 사실이다. 비록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두 사건은 빙산의 일각일 수 있다. 우리 사회가 그토록 격렬하게 반응한 것도 예의 없고 이기적이고 진지하지 못한 청년에 대한 우려가 저변에 깔려 있기 때문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예컨대 어린아이들이 욕 없이 대화하는 것을 보기 힘들고, 중·고등학교 교실 풍경이나 대학 캠퍼스 문화도 걱정이긴 매한가지다.

이기적이고 예의없는 청년들

그렇다면 이는 진지한 토론이 필요한 매우 심상치 않은 일임에 틀림없다. 극히 예외적인 사건이라면 두 주인공이 비난받는 것으로 그칠 수 있다. 하지만 빙산의 일각이라면 이는 우리의 젊은이들을 그렇게 길러낸 기성세대와 교육 제도의 문제로 귀결된다. 청(소)년은 사회의 거울이다. 이 시대의 청년이 실제로 그렇게 예의 없고 이기적이고 진지하지 못하다면 우리 청년을 그렇게 길러낸 기성세대의 냉정한 자기반성과 교육 제도 전반에 대한 성찰이 필요한 것이다.

그렇다. 소위 경희대녀와 발길질녀 사건을 바라보면서 우리가 취해야 하는 관점은 그 두 당사자에게 저주와 사회적 비난을 퍼붓는 것이 아니라, 차라리 우리 자신, 우리 사회의 윤리 체계와 교육 제도 등을 성찰하는 것이어야 한다. 두 사건에 충격 받고 이 시대 청년들에 대해 그토록 우려와 비난을 퍼부으면서도, 교육 제도 전반과 기성세대인 우리 자신에게 어떤 문제들이 있고 그것들은 또 어떻게 개혁돼야 하는지에 대해 이토록 둔감하고 공론화되지 않는 것이야말로 비극이다.

금주는 또한 청소년 주간이다. 안타깝게도 이 사실마저 우리 사회는 별로 기억하지 않은 채 보내고 있다. 두 사건이 온 사회를 충격에 몰아넣은 직후이자, 청소년 주간이며, 교육감 선거 직전이기도 한 이 특별한 주간에 청소년을 어떻게 가르치고 어떻게 키워야 할지, 청년 패륜 사건의 재발을 어떻게 막아야 할지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없었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다. 청년의 일탈과 패륜 사건이 끊이지 않는 이유와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의 핵심은 바로 여기에 있다. 기성세대가 이런 식으로 대응하는 한, 우리 사회가 이런 식의 마녀사냥에만 집중하는 한, 우리 사회의 고민이 이렇게 문제의 핵심에 다가가지 못한 채 드러난 사건과 표피에만 머물러 있는 한, 소위 경희대 패륜녀와 발길질녀는 계속 나올 것이다.

사건에만 반응하고 사건 당사자에게만 초점을 맞추는 지금의 논의로는 안 된다. 개인의 문제로만 좁게 해석해 사건 관련자 사이에 사과하고 용서하면, 야단치고 벌주고 나면, 아무 일 없던 것처럼 잊고 마는 현상이 지금처럼 반복된다면 우리는 같은 비극을 계속 맞게 될 것이다.

기성세대가 먼저 반성해야

패륜녀 사건과 발길질녀 사건은 우리 교육 제도를 총체적으로 점검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 두 청년을 야단치는 것으로 할 일 다 했다고 생각할 게 아니라 우리의 교육 제도와 사회윤리 체계를 근본적으로 점검하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가정교육과 부모의 역할에 광범위하게 깔려 있는 균열과 인성교육이 핵심이어야 할 초·중등 교육의 문제, 대학 교육의 부실 구조 등에 우리 사회가 보다 정직하게 천착하고 성찰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고통스럽더라도 우리 자신을 변화시키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 사회와 교육이 한 단계 질적 전환을 모색하는 생산적 계기가 되길 간절히 바란다.

홍덕률 (대구대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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