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처 인사이드-이광형] ‘시’ 그리고 ‘하하하’ 기사의 사진

#풍경 1.

현지 분위기로는 황금종려상을 목전에 둔 듯했다. AFP 통신은 ‘시와 범죄를 조합한 한국 작품이 칸을 감동시켰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이창동 감독의 시가 상영된 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10대 성폭행범과 시의 조합이 칸 영화제를 뒤흔들어 놓았고 최고상을 차지하려는 아시아의 위상을 확고히 했다”고 전했다. 윤정희에 대한 찬사도 쏟아졌다. 로이터 통신은 ‘윤정희, 칸 영화제에서 스크린으로 복귀’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한국의 베테랑 여배우인 윤정희가 칸 영화제에 출품된 이창동 감독의 ‘시’를 통해 오랜 기간의 침묵을 깨고 파워풀한 복귀를 했다”며 “한 아이의 죽음에서 비롯된 비극적 후유증을 여배우의 훌륭한 연기로 풀어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결과는 각본상 수상이었다. 국내 언론은 외신 보도를 인용하며 황금종려상 수상이 유력하다고 호들갑을 떨었지만 칸의 잣대는 엄격했다. 그렇다고 각본상 수상이 폄하될 이유는 없다. 영화에서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것이 각본이니까. 한국영화로는 처음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 대상을 차지한 홍상수 감독의 ‘하하하’도 박수감이다.

#풍경 2.

극장은 텅 비어 있었다. 칸 수상이 무색할 지경이었다. ‘시’도, ‘하하하’도 ‘아바타’ 같은 3D가 없고 현란한 액션도 없으니 관객이 몰려들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스크린도 아트 영화를 상영하는 몇몇 극장에만 걸렸으니 보고 싶어도 보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고집스럽게 작업하는 두 작가주의 감독을 관객들은 외면하고 있었다.

스크린쿼터니 문화다양성이니 내세우면서 흥행에는 다소 못 미치지만 작품성 뛰어난 영화를 적극 지원하겠다는 영화진흥정책도 헛구호나 다름없어 보였다. 상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세계 최고의 권위를 가진 칸 영화제 진출에 기울인 노력을 감안하면 국제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은 작품에 대한 홀대가 아쉽다.

이런저런 아픔과 상처를 뒤로 하고 강물처럼 흘러가는, 이제는 아무도 읽지 않고 짓지도 않는 한 편의 시처럼 담담하게 펼쳐지는 ‘시’에는 삶의 편린들이 녹아 있다. 통영의 세병관과 동피랑 등을 배경으로 남녀의 엇갈린 사랑과 일상을 관찰자적 시선으로 들여다보는 ‘하하하’에는 여름의 ‘하’(夏), 웃음의 ‘하’, 감탄의 ‘하’ 등 유머가 가득하다.

#풍경 3.

조희문 영화진흥위원장이 도마에 올랐다. 문화체육관광부 신재민 제1차관은 최근 독립영화 제작지원 심사에 압력을 넣었다는 의혹이 제기된 조 위원장에 대해 지난달 27일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사퇴 압력을 넣었다.

조 위원장은 칸 영화제 출장 중이던 지난 14∼15일 영진위 독립영화 제작지원 심사위원 9명 가운데 7명에게 국제전화를 걸어 특정 다큐멘터리 2편과 장편 1편을 선정해 달라고 요구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의혹은 사실로 드러났고 조 위원장은 신 차관의 사퇴 압력에 일주일째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영진위는 1999년 공사에서 정부의 위임을 받은 민간 전문기구로 전환된 이후 어떤 작품을 지원하느냐에 따른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이념과 정치색 등에 따라 지원을 못 받는 쪽에서 계속 불만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위원장들도 임기를 제대로 못 채우고 그만두는 경우가 많았다. 조 위원장도 불명예 도중하차의 상황에 놓였다.

한국영화는 이제 칸, 베를린, 베니스 등 국제영화제에 나가기만 하면 수상의 쾌거를 올릴 정도로 경쟁력을 갖추었다. 우리 영화에 대한 관객들의 열렬한 호응과 정부의 지속적인 지원 및 꾸준한 인프라 구축에 따른 결과다. 하지만 극장은 돈 되는 영화만 상영하고, 관객들은 블록버스터 영화에만 몰려들고, 영화진흥을 이끄는 인사들은 무슨 큰 벼슬인 양 행세하는 후진성 현실이 안타깝다.

이광형선임기자 gh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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