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노재선] 농협 信·經분리 늦출 이유없다 기사의 사진

농협의 신용사업과 경제사업 분리를 골자로 하는 농협법 개정안이 18대 국회 전반기 통과가 무산되면서 농협의 신경분리 논의가 장기 표류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지난 4월 농식품위 법안심사소위에서는 지주회사 설립 등 일부 쟁점에 대한 합의를 도출하기도 했으나 부족 자본금 지원, 조세특례, 보험회사 설립 등 사업구조 개편의 핵심 쟁점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는 시작하지도 못했으며, 5월에는 법안심사소위 자체가 개최되지 않았다.

농협의 사업 구조 개편은 농업 및 농촌과 매우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므로 국회 차원에서 신중히 검토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농협의 농업인 지원 기능과 농산물 유통 기능을 강화해 농업의 체질을 개선하고 보다 살기 좋은 농촌을 만들기 위한 재도약의 기틀을 만드는 것은 한시도 미룰 수 없는 시급한 과제다. 우려되는 것은 농협 사업 구조 개편의 실기(失期)이다. 사업 구조 개편에 대한 정부와 농협, 그리고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었음에도 국회 법안 심사가 지연돼 때를 놓치는 우를 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10여년 끌어온 개편 논의

지난 10여년 동안 국내 농업과 농촌 환경이 악화되면서 농협이 환경 변화와 농업인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과 우려가 제기돼 왔고 이에 따라 농협의 사업 구조 개편에 대한 정부, 농협, 농업인 단체, 학계 등의 논의가 지속돼 왔다. 지난해 12월 정부가 제출한 농협법 개정안을 계기로 사업 구조 개편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농업인들은 농협이 농업인을 위한 조직, 농업과 농촌 발전을 견인하는 경쟁력 있는 조직으로 거듭나기를 기대했다. 특히 그동안 농협 개혁에 소극적이었던 농협중앙회도 자체적으로 농협 개혁 방안을 심도 있게 검토해 사업 구조 개편을 적극 추진하고 있기 때문에 농업인들의 기대는 그만큼 더 크다.

농업 개혁은 농협을 50년 만에 시장지향적인 조직체계로 전환하는 것인 만큼 해결해야 할 여러 가지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 농협도 촉박한 시간을 감안해 지난 연초부터 대규모 전담 조직을 설치하고 개혁에 필요한 제반 작업을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농협법 개정안에 대한 논란이 장기화되면서 농협 임직원들의 개혁에 대한 추진 의지가 약화되고, 조직 내부 혼란만 가중시키지 않을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했다. 스포츠 선수의 긴장감은 대기실, 출발선에서 최고조에 이르지만 대기시간이 길어지면 그 긴장감이 피로도로 바뀌는 것과 같은 이치다. 전력으로 달리는 데 쓰여야 할 에너지가 엉뚱한 데서 소모되는 것이다.

국회, 법 개정 서둘러야

이번 사업 구조 개편은 농협의 경제사업 활성화와 농업인 지원 역량을 한층 더 강화하기 위한 작업의 일환인 만큼 신속하고 차질 없이 추진돼야 한다. 이러한 과정에 입법기관인 국회의 지원이 필요함은 물론이다. 이번 지방선거 이후에는 국회의 새로운 원 구성 등 정치일정으로 신경분리 동력이 급속히 약화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특히 올 하반기에는 한·미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 처리 문제나 쌀 시장 개방 등 굵직한 농업 현안이 기다리고 있어 자칫 농협법 개정안이 또다시 표류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그간 국회에서의 논의가 부족했다면 조속히 법안심사소위를 열고 적극적인 논의와 법안 심사를 진행해야 할 것이다.

드러난 악재는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촉매가 될 수도 있지만 ‘불확실성’은 그 존재 자체만으로 위기라고 할 수 있다. 산적한 농업 현안을 짊어지고 있는 농협을 안갯속에 방치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하루 빨리 농협이 우리 농업과 농촌, 그리고 농업인에게 다시 한번 기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줘야 할 것이다. 농협 사업 구조 개편을 향한 그동안의 노력과 희망이 헛되지 않도록 정부와 국회의 배려가 절실한 시점이다.

노재선서울대 교수(농경제사회학부)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