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WCA ‘살림 돌보미 비전축제’서 대상받은 정현숙씨… 파출부 36년“자녀 키워낸 고마운 직업” 기사의 사진

그의 손은 투박했다. 손마디가 소나무 옹이처럼 굵은 그 손의 주인 정현숙(76)씨는 살림돌보미다. 그는 ‘파출부’로 불리던 그 일을 마흔에 시작했고, 아직도 하고 있다. 4일 여의도 공원에서 만난 그는 “부러 숨기지는 않지만 드러내 자랑할 거리도 못되는데 큰 상을 받게 됐다”며 수줍게 웃었다.

정씨는 5일 서울 화곡동 KBS 88체육관에서 펼쳐지는 한국 YWCA 주최 ‘2010 돌봄과 살림 돌보미 비전축제’에서 대상을 받는다. 한국 YWCA가 지난 40여년간 진행해 왔던 기존 돌보미 서비스를 바탕으로 프리미엄 돌보미 서비스 브랜드 ‘돌봄과 살림’을 출범하면서 35년 이상 일을 한 회원들에게 근속상을 주는 것이다.

“한국 YWCA 돌보미는 YWCA에서 보증하는 사람들이라서 어디에서도 인정을 받았어요. 그래서 자긍심을 갖고 일할 수 있었지요.”

일 시작하고 처음 2년만 우리나라 가정에서 일했고, 일어와 영어를 잘해 주로 외국인가정에서 일했단다. 일제시대에 살았으니 일어에 능통했다. 또 1950년 이화여고에 입학했다 전쟁이 나 피난지에서 전주사범으로 편입, 전북대 3년까지 마쳤으니 영어도 웬만큼 했던 것. 당시로는 인텔리였던 그가 이 일을 하게 된 것은 대학 교직원이었던 남편이 급사했기 때문. 서른아홉에 홀로 된 그에게 남은 것은 아직 애티를 벗지 못한 열세 살짜리 맏딸부터 낳은 지 100일도 안 된 막내아들까지 4남3녀의 자식뿐이었다. 남편이 8남매 맏이어서 시댁 살림을 돌보다 보니 남겨 놓은 게 없었다. 동회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때 우연히 한국 YWCA의 파출부 모집 소식을 듣고 응시, 필기시험과 면접을 거쳐 일을 시작했다.

“아이들과 먹고 살아야 되니까 잘리면 안 되잖아요. 그래서 아무리 어려운 일을 시켜도 다 해냈어요. 덕분에 인기 돌보미가 됐지요.”

파출부라고 업신여기는 이들도 간혹 만났지만 자식들과 먹고 살게 해준 그 일이 고마웠을 뿐이라는 정씨는 “취직이 안 됐다고, 시험에 떨어졌다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요즘 젊은이들이 안타깝다”고 했다. 초등학교 교감, 대기업 부장 등으로 성공한 자식들은 이제 일을 그만하라고 하지만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일을 계속할 계획이라고 했다.

“1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들어갔으니 그만두기 아깝잖아요. 또 일하다 쉬면 아프다고 해서 계속 하는 거지요.”

요즘도 일주일에 4일은 반나절 일을 한다는 정씨는 웃을 일만 있다고 했다. “자식들 월사금 걱정도 없고, 일요일에도 일하느라 볼 수 없었던 예배도 꼬박꼬박 드릴 수 있고, 무엇보다 아버지 없이도 훌륭하게 자라 제 갈 길을 가고 있는 자식들이 있어 너무나 행복하다”고 했다. 딸이 건강에 좋다며 사줬다는 은가락지를 끼고 있는 그의 손은 투박했지만 따뜻했다.

글=김혜림 선임기자, 사진=최종학 기자 ms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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