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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종 칼럼] 한 기자가 쓴 반성문

[백화종 칼럼] 한 기자가 쓴 반성문 기사의 사진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기자들만 모르는구먼.” 지방선거 직전, 친지가 판세를 어떻게 보느냐고 묻기에 각종 여론조사의 공통된 결과대로 야당이 어려울 것이라고 답하자 돌아온 핀잔이었다. 기자가 바닥 민심을 너무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때 더 이상 토를 달지 않았기에 망정이지, 만일 아는 척하고 그 핀잔에 반론이라도 폈더라면 더 큰 망신을 살 뻔했다. 기자의 예상을 빗나가 선거는 한나라당의 참패, 민주당의 대승으로 끝났으니 말이다.

제도권 언론 여당 패배를 돕다

요전 선거에서 패배한 건 정부·여당만이 아니었다. 여당이 수도권을 석권하는 등 압승하리라고 예고한 여론조사기관들도 신뢰를 잃어 존폐의 기로에 서게 됐다. 그러나 그에 못지않게 얼굴 들기가 쑥스럽게 된 건 세상 돌아가는 걸 모른 제도권의 주요 언론들이 아닐까 싶다.

선거가 끝난 뒤, 주요 언론들의 각종 분석들을 보노라면 마치 한나라당의 패배는 일찍부터 예정돼 있었으며 자신들은 그리 되리라는 걸 미리 다 알고 있었다는 투다. 심지어 정부·여당이 그렇게 하도록 여론몰이를 하던 언론들까지 정부·여당이 그렇게 했기 때문에 패배할 수밖에 없었다는 식의 분석과 탓을 서슴지 않는다.

평생을 신문쟁이로 사는 처지에서 이런 말을 하면 누워서 침 뱉는 격이겠으나 이번 한나라당의 패배에는 제도권의 주요 언론들, 특히 보수 성향의 언론들도 한몫 거들었다고 생각한다. 생산자인 그들은 자신들의 성향에 맞춰 말해주거나 보여주고 싶은 것만 소비자인 독자와 시청자에게 공급해 왔다. 여론이 그쪽으로 형성되길 기대하며.

물론 정권에 비판적인 진보 성향의 언론들이라고 해서 다를 건 없었다. 그러나 진보 언론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시장 점유율이 높은 보수 언론들의 목소리는 크게 울릴 수밖에 없었고, 그 큰 목소리가 국민 절대 다수의 여론으로 인식됐다. 보수 정권으로서는 자신의 구미에 맞는데다 목소리가 큰 보수 언론들을 우군으로 삼아 국정을 운영했대서 이상할 건 없다.

그런데 문제는 보수 언론들을 통해 크게 울리는 목소리만이 반드시 민심을 대변하는 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정부에 비판적인 목소리들도 많았지만 천안함 사건 등을 계기로 더 거세진 보수 언론들의 공세에 눌려 숨죽이고 있었다. 그러다가 포장 안에서 한꺼번에 토해낸 것이 이번 선거 결과인 것이다. 다수의 여론이 큰 목소리에 눌려 왜곡돼 있었다는 얘기이며, 그 왜곡 때문에 나타난 게 한나라당이 압승한다는 여론조사 결과였다.

정부·여당과 함께 제도권의 주요 언론들이 이처럼 여론을 잘못 읽은 것은 이른바 ‘집단 사고(groupthink)의 오류’ 때문이기도 하다. 비록 엘리트 집단이라 하더라도 구성원들의 결속력이 강하고, 지향점이 너무 외곬으로 치우치고, 권위주의적인 리더가 이끌 경우 목표에 맞춰 일방적인 사고만 하게 됨에 따라 판단의 오류가 발생하는 게 집단사고의 오류인데, 이번 일도 그에 해당된다는 것이다. 또 일각에서는 현 정권이 들어서면서 여론 조사 대상자들이 자신의 의사를 자유롭게 표시하는 데 부담을 느끼기 때문에 그 결과가 엉터리로 나왔다고 분석하기도 한다.

큰 목소리만이 여론은 아니다

보수든 진보든 언론이라면 마땅히 시시비비를 가리고 자신의 주장을 내세워야 한다. 그렇더라도 그에 앞서 자신의 호·불호를 떠나 사실만은 있는 그대로 전달해야 한다. 언론 자신의 판단과 권위와 신뢰를 위해서도 그렇고 언론 소비자들의 알 권리 보호 차원에서도 그렇다. 무엇보다도 위정자들이 사안을 합리적으로 판단하여 국정을 올바로 운영하는 데 나침반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물론 관성적 사고에 매몰돼 침묵 속에 진행되던 민심의 변화를 못 읽었던 기자 자신을 질책하는 말이기도 하다.

위정자들도 구미에 맞고 크게 울리는 소리만 들을 게 아니다. 듣기 거북하고 밑바닥을 흐르며 나는 작은 소리도 들을 수 있는 관용과 지혜가 필요하다. 이른바 민심과의 소통이라는 것이다. 변화를 읽어내고 시의에 맞게 대응함으로써 국정을 바로 이끌기 위해서다. 그래야 이번 선거에서처럼 뒤통수를 얻어맞고 허둥대지 않는다.

전무이사 wjbae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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