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 옛 그림] (23) 대나무에 왜 꽃이 없나 기사의 사진

소동파가 서슴잖게 말한다. “고기반찬 없이 밥 먹을 수 있어도 대나무 없이 살 수는 없다.” 동파가 대통밥과 죽순을 더 좋아해서 그런가. 천만에, 식미와 상관없다. 그는 덧붙인다. “고기를 못 먹으면 야위지만 대나무를 안 심으면 속(俗)된다.” 배는 곯아도 속되기는 싫다는 얘기다.

대나무는 데데하지 않다. 뿌리가 단단하고 줄기가 굳세다. 속이 빈 것은 겸허와 통하고 마디가 맺힌 것은 절개와 견준다. 풍진(風塵) 세상이라지만 이리 휘고 저리 굽는 꼴을 대나무는 못 봐준다. 휘느니 부러지라고 말하는 게 대나무다. 회초리도 대나무로 만든다.

대나무가 바람에 맞서는 그림이다. 잎사귀에 사각거리는 소리 들리는데, 빳빳이 서려는 대나무의 앙버팀이 눈에 띈다. 뒤편 그림자 진 대나무 때문에 앞쪽 호리호리한 대나무의 기세가 더 당차게 보인다. 그린 이는 이정이다. 그는 왕실 자손으로 고조부가 세종대왕이다. 임란 때 왜구의 칼에 팔이 떨어져 나갈 상처를 입고도 꿋꿋이 붓을 잡아 조선 최고의 대나무 화가로 우뚝 섰다. 칼날도 견뎠는데 바람이 대수이겠는가.

눈비나 바람을 맞는 대나무 그림은 흔하다. 하지만 꽃이 핀 대나무 그림은 드물다. 수 십 년 지나도 꽃이 필까 말까 해서 그런가. 이유가 못내 궁금하다. 청나라 화가 정섭이 넌지시 일러준다. 그가 쓴 대나무 시는 이렇다.

‘마디 하나에 또 마디 하나/ 천 개 가지에 만 개 잎이 모여도/ 내가 기꺼이 꽃을 피우지 않는 것은/ 벌과 나비를 붙들지 않으려 함이네’

손철주(미술칼럼니스트·학고재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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