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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한글성경 번역 선교사 존 로스 묘지를 가다… 표지판도 없는 쓸쓸한 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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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에든버러 달케이트 거리 뉴윙턴 묘지공원. 이곳엔 135년 전 한국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헌신한 존 로스(1842∼1915) 선교사의 무덤이 있다. 그가 번역한 ‘예슈셩교젼셔’(1887)는 한국교회 형성기 민중의 신속한 복음 수용과 교회 팽창의 디딤돌이 됐다. 한자의 독점을 깨고 한글에 복음을 담아 암흑기속 민중에게 희망을 제시했던 것이다.

공원에 들어서자 울창한 숲이 한눈에 들어왔다. 1000개는 족히 될 법한 비석들이 축구장 20개 크기의 공원에 흩어져 있었다. 그러나 한국교회에 절대적 도움을 준 선구자의 무덤을 알리는 표지판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안내자인 수전 마카이(55·여)씨는 “이곳이 40에이커(16만1800여㎡)는 족히 될 것”이라며 “며칠 전 한국 사람들이 버스를 타고 로스 선교사의 무덤을 방문했다”고 귀띔했다.

“여깁니다.” 중국 만주지역 개신교의 선구자이자 최초의 한국어 성경번역자 로스의 무덤이었다. 이끼가 낀 2m 높이의 묘비엔 로스가 74세의 나이로 1915년 8월 7일 에든버러에 묻혔으며, 그 아래엔 4명의 자녀가 중국에서 사망했다고 기술돼 있었다.

로스는 스코틀랜드에서 1842년 8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1865년 에든버러 연합장로교회 신학부에 입학해 신학교육을 받았으며, 1872년 4월 중국으로 향했다. 당시 30세였던 로스는 이듬해 3월 아내 스튜어트가 출산 후 숨을 거두는 아픔을 겪는다. 갑작스런 아내의 죽음은 그를 고통스럽게 했을 것이다. 그때 윌리엄슨 목사로부터 6년 전 토머스 목사가 제너럴셔먼호를 타고 조선에 복음을 전하려다 순교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로스는 복음이 들어가지 않은, 아시아의 마지막 땅 조선에 복음의 문을 열겠다고 결심한다.

로스는 한국인 번역자들의 도움으로 10년 만에 험난하기만 한 신약성경 번역작업을 마친다. 그의 노력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성서번역을 위해 함께했던 서상륜 이응찬 백홍준 등은 서울이북지역 교회와 소래교회, 새문안교회의 설립 멤버가 됐다. 물론 성경은 복음전파의 강력한 도구로 활용됐다.

“한국에는 몇 명의 크리스천이 있습니까.” 마카이씨와의 문답이 이어졌다. “1000만명 정도 된다고 합니다.” “뭐라고요? 정말 대단하네요.” “아닙니다. 당신과 같은 스코틀랜드인 로스 선교사가 없었더라면 그렇게 많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렇군요. 하지만 스코틀랜드는 크리스천이 점차 줄어들고 무슬림이 늘고 있어요.”

로스의 묘 주변엔 구구절절한 사연이 담긴 비석이 즐비했다. 성경은 모든 사람이 죽는다고 말한다. “다 흙으로 말미암았으므로 다 흙으로 돌아가나니 다 한 곳으로 가거니와”(전 3:20) 로스는 오늘도 묘소를 찾는 이들에게 ‘짧은 인생, 어떻게 주를 위해 살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에든버러=글·사진 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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