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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조현삼] 사람은 사람과 살 때 행복하다

[삶의 향기-조현삼] 사람은 사람과 살 때 행복하다 기사의 사진

사람과 사람이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사람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사람은 완전하지 않다. 사람은 누구나 연약함이 있고, 부족함이 있고, 허물이 있고, 좋은 것이 있고, 뛰어난 것이 있다. 이 세상에 있는 사람들은 이것들을 한몸에 지니고 있다. 만약 이 세상에 있는 사람들 중에 연약함이 없고, 부족함이 없고, 허물이 없고, 좋은 것만 있고, 뛰어난 것만 있다면 그는 사람이 아니라 천사이거나 하나님이다. 사람 중에는 이런 사람이 없다.

사람은 사람으로 살 때 행복하다. 사람이 천사가 되려고 하거나 사람이 하나님이 되려고 하면 그것이 불행의 시작이다. 하나님에 의해 지음 받은 첫 사람 아담은 그의 이름 아담 자체가 사람이란 뜻이다. 아담은 아담으로, 사람은 사람으로 살 때 행복하다. 우리는 다 사람이다.

사람은 누구나 연약함이 있고, 부족함이 있고, 허물이 있고, 좋은 것이 있고, 뛰어난 것이 있다. 이것을 인정하는 것은 사람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것을 인정하면 사람에게 있는 연약함과 부족함과 허물 그리고 좋은 것과 뛰어난 것을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가 남는다. 자신 안에 있는 이것들, 다른 사람 안에 있는 이것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이것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우리는 관계 속에서 행복을 경험할 수 있고, 관계 때문에 힘들어할 수도 있다.

완전해지려는 노력은 헛수고

연약함과 부족함, 허물이 없는 사람이 완전한 사람이다. 완전한 사람은 태어나지도 않지만 만들 수도 없다.

자신이든 남이든 완전한 사람을 만들려고 하는 것은 불행이다. 왜냐하면 불가능한 일을 가능한 줄 알고 시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솔로몬의 표현을 빌리면 이것은 바람을 잡으려는 수고다. 헛수고다.

오늘도 완전한 사람, 완전한 가정, 완전한 교회, 완전한 사회, 완전한 나라를 만들기 위한 시도들이 계속되고 있다. 연약함이 없고 부족함이 없고 허물이 없는 완전한 사람, 완전한 교회, 완전한 사회, 완전한 국가를 만들려고 한다. 부지런히 연약한 것을 지적하고, 부족한 것을 비판하고, 허물을 들춰낸다. 완전한 사람, 완전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하는 일이다. 이렇게 함으로 완전한 사람, 완전한 공동체를 만들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가능하면 이런 일은 일찍 포기하는 것이 좋다. 더 좋은 것은 아예 이런 목적과 목표로 뛰지 않는 것이다.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타인을 용납하고 용서해야

친구와 함께 장학회를 섬긴 적이 있다. 신학대학원생들 중에서 몇 명을 뽑는데 서류로 1차 전형을 하고 2차 면접을 했다. 면접을 하는 과정에서 좀 세게 한 적이 있다. 면접 형식을 빌려 훈계를 한 것이다. 상대가 면박을 당했다고 느낄 정도로 좀 세게 했다. 마음으로 그를 장학생으로 선발할 생각을 했기에 그렇게 했다. 장학생이 되면 정기적으로 함께 만나기 때문에 좀 세게 한 것의 의미를 그에게 알려줄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결정 과정에서 그 학생이 탈락했다. 그리고 몇 년이 흐른 뒤 목사님들 모임에서 그 학생을 만났다. 그는 목사가 되어 있었다. 나를 보자 피했다. 고개를 돌리는 그 모습을 보면서 참 가슴이 아팠다. 그때 일부러라도 찾아가 미안하다고 한마디 하지 못한 것이 지금껏 못내 아쉽다.

이 경우에서 보듯 만나는 사람마다 바로 잡아 완전한 사람을 만들려고 했던 시절이 내게 있었다. 사람이든, 제도든 모든 것을 바로 잡는 것을 사명처럼 여기던 내게 하나님은 오히려 사람을 용납하고 용서하라고 하셨다. 지금 나는 완전한 사람을 만들려고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가 사람인 것을 인정하고 그를 용납하고 그 사람과 더불어 산다. 행복하다.

조현삼(서울광염교회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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