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처 인사이드-전정희] 축구는 문화다 기사의 사진

“스포츠? 숨 쉬듯 했고, 영화? 밥 먹듯이 보았다. 섹스? 노코멘트.”

요절한 문학평론가 이성욱(1960∼2002)은 기형도 시인 못잖은 문재(文才)이자 기인이었다. 특히 그의 대중문화 비평은 독자적인 ‘이성욱 지형도’를 구축할만큼 탁월한 것이었다.

그는 작은 키였으나 차돌같이 단단했고 파이팅이 넘쳤다. “우리 엄마는 대체 뭐를 믿고 부잣집 아이들이나 다니는 부산의 사립 동래국민학교에 넣었는지 모르겠으나 나는 거기서 6년 내내 열등감에 시달려야 했다”는 하소연을 들은 적이 있다. 이때부터 왕따가 되지 않기 위한 히틀러식 ‘그의 투쟁’이 시작됐다.

그가 거론한 소위 ‘3S(스포츠 영화 섹스)’는 프로야구가 출범한 1981년 무렵, 독재정권의 우중(愚衆) 정책에 놀아난다는 대표적 죄악이었다. 스포츠 열풍과 함께 밀려들어 온 나이키 브랜드는 제국주의 군홧발로 묘사돼 배척되던 그런 시절이었다. 그랬거나 말거나, 그는 대학 시절 내내 대오를 이탈해 보헤미안이 됐다.

이성욱은 지독한 축구광이었다. 평론가 시절, 문학판 축구부 ‘소나기’팀에 속해 영화판 ‘가고파’팀과의 일전을 위해 여수 앞바다 섬에 토요일 출장 갔다가 다음날 올라올 정도였다. 아시아 최강 버마(미얀마)의 스트라이커 몽윈몽을 비롯해 주전 몽몽틴, 몽몽탄, 몽에몽 등을 좔좔 외웠고 ‘몽’자가 많은 것은 버마에선 유부남들 이름에 모두 몽자를 넣는다는 박물지적 자랑도 잊지 않았다.

뿐이랴. 70년대 우리 대표팀 최고 스트라이커 이회택, 철벽 김호와 김정남, 재간둥이 정강지, 왼발슈터 서윤찬, 공포의 라이트 윙 박이천, 깡패 골키퍼 이세연, 이들 모두의 맏형 정병탁 등의 한국 축구사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되곤 했다. 야구 레슬링 탁구 복싱도 담론이 됐다.

또 김추자 조용필, 이승복 동상, 성인 주간지 ‘선데이서울’, 오락 프로그램 ‘쇼쇼쇼’, 신사동 카바레, 드라마 ‘전원일기’ 등 20세기 한국 문화 아이콘이 ‘색기발랄’하게 정리됐다. ‘20세기 문화 이미지’ ‘한국 근대문학과 도시문화’ 등 많은 저서와 논문에서 성장을 거부하는 ‘양철북’ 소년의 눈으로 세밀히 복원해 냈고 당대의 트렌드를 읽어냈다. 그의 공과는 유작의 가치를 지니며 오늘로 전해진다.

스토리텔링 문법이 대세인 요즈음 그가 조금만 더 살았어도 우리의 불모지인 대중문화사를 빼어나게 정리하는 스토리텔러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남아공 월드컵에서 한국팀 활약과 그 경기를 즐기는 국민 에너지를 보면서, 이러한 대중문화를 가치로서 읽어내지 못하는 서생적 대중문화 트루기에 갈증을 느낀다. 근대 소비자의 탄생이 100년에 이르렀는데도 여전히 우리의 문화 비평은 ‘깨어 있는 소수’, 즉 고급문화 향유자의 시녀란 점을 지울 수 없다.

순수 소설과 시는 결기만 남은 채 잔기침하는 늙은 선비와 같고, 클래식 무대는 자신의 성량과 주름살을 인식 못하고 우아한 자세로 커튼콜만 기다리는 철없는 성악가와 같다. 그런데도 비평가는 여전히 그들 상찬에 바쁘다. 미술 평론의 경우는 아예 용비어천가에 가깝다.

그러는 동안 TV 드라마의 통속은 ‘막장’이라는 비평이 나올 만큼 급락했고, 가요는 계보 정리조차 불가능해졌다. 이제 대중문화는 매스커뮤니케이션의 발달과 수용자의 생활수준 향상으로 고급문화를 압도한다. 건강한 중산층이 여가를 즐기는 것을 넘어 축구처럼 경제적 이해관계와 국가적 정략이 개입된 복잡미묘한 경제주체가 되는 상황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성읍 거리에 동남과 동녀가 가득하여 거기서 장난’하는 축구 축제다. 이 에너지는 노동에서 비롯되며 노동을 위한 놀이다. 창조질서인 셈이다. 이 난장에 대해 누군가 텍스트를 내놓아야 한다. 그래서 지금 학형 이성욱이 그립다.

전정희 인터넷뉴스 부장 jhje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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