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박병권] 아넬카와 클로제 기사의 사진

모든 국민을 우울과 분노에 빠지게 했던 천안함 피격사건이 유엔으로 무대를 옮겨가 남북을 중심으로 한 외교전으로 바뀌었다. 지역일꾼을 뽑는 지방선거도 야권의 승리로 일단락됐다. 여야의 희비가 엇갈렸지만 승자는 승자대로, 패자는 패자대로 환희와 분노가 조금은 가라앉았을 만큼의 시간은 흘러간 것 같다.

마침 지루한 장마소식이 남녘으로부터 전해지고 기대와 성원을 한 몸에 받았던 우주시대의 상징 나로호도 발사 직후 폭발해버려 서민들은 별 재미가 없다. 이 때를 맞춰 남아공에서 열리고 있는 월드컵 소식은 잔잔한 일상에 활력을 주는 악센트가 아닌가 한다. 공을 그물에 차 넣는 정말 단순한 경기인 축구는 남자들을 흥분하게 만든다.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를 여자들이 제일 싫어한다지만 나와 아들은 새벽을 낮 삼아 4년만의 제전을 즐기고 있다.

서로의 영역을 갈라 상대 진영에 골을 넣는 축구는 중세 봉건시대 제후들이 주군으로부터 하사받은 자기 땅은 지키고 남의 땅을 빼앗는 장면을 연상시킨다. 이 때문에 봉건제도가 정착했던 유럽에서 축구가 인기를 얻은 뒤 전 세계로 퍼진 것으로 보인다. 11명의 선수가 캡틴을 중심으로 전열을 정비해 상대를 교란시킨 뒤 그물망을 뒤흔드는 것은 무기를 들지 않은 전쟁에 다름 아니다. 창과 칼 대신 단련된 체력과 개인기를 앞세우는 것이 다를 뿐 현대판 영역 쟁탈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축구 용어도 전쟁용어와 동일하다. 전술과 전략, 전형(전투형태), 침투 등등. 특히 전쟁처럼 휴식시간이 짧은데다 전후반 90분 동안을 쉴 새 없이 뛰어다니며 동료와 호흡을 맞춰야 하기 때문에 단결심과 협동심을 기르는 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운동이다. 수많은 마니아를 탄생시키는 비결이기도 하다.

이번 월드컵도 예년과 마찬가지로 여러 화제를 낳고 있다. 수비 위주라 엄청 재미가 없다, 오심이 지나치게 많다, 아프리카 악기인 부부젤라가 너무 시끄러워 경기진행을 방해한다는 것 등이다. 또 평소엔 축구에 아무 관심 없던 대기업들이 이 기회를 맞아 거리응원전을 주도하면서 국가대표 응원단과 마찰을 빚는 사상 초유의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에 더해 나는 축구스타의 필요충분조건을 짚어보고 싶다.

대중을 상대로 하는 장르에는 스타가 필수적이다. 축구도 스타가 있어야 흥행이 되고 대중의 사랑을 받는다. 이런 점에서 감독과 마찰을 빚고 대표팀에서 쫓겨나 월드컵이 끝나기도 전에 보따리를 싼 프랑스의 스타 니콜라 아넬카는 불행하다. 세계 최고 수준의 영국 프리미어리그 득점왕 출신인 그의 묘기를 더 이상 볼 수 없는 것은 세계 축구팬들의 불행이기도 하다. 감독에게 어느 정도의 험한 말을 했는지는 자세히 알 수 없으나 부진을 탓하는 감독에 대한 분노를 자제하지 못한 듯싶다. 독일의 득점왕인 클로제도 경고를 두 번 받아 세르비아 전에서 퇴장당했다. 클로제는 월드컵 최다골 기록을 경신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는데 출전기회를 스스로 포기한 꼴이 돼 수많은 축구팬들에게 아쉬움을 남겼다.

세상을 살다 보면 억울한 일이 한둘이 아니다. 나의 참뜻이 왜곡돼 이기적이고 못된 놈으로 인식되는 분함을 어찌 참을 수 있을 것인가. 죄도 없는 사람이 수사기관에서 실컷 얻어맞고 무죄판결을 받았을 경우에는 더 말해서 무엇하랴. 그러나 어찌할 것인가. 당장 손해를 보는 듯해도 분함을 가슴에 삭이는 것이 훨씬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참을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더구나 세계적인 스타의 경우에는 인내와 절제가 필수 항목이다. ‘인내는 인간의 제2의 용기다’란 말도 있다. 참는 것은 그만큼 큰 용기를 필요로 한다는 뜻이리라.실제로 어떠한 일이든 견딜 수 있는 사람은 어떠한 일도 해낼 수 있는 법이다.

그래서 이런 명구가 있다. 참고 또 참을 것이며, 경계하고 또 경계하라. 참지 않고 경계하지도 않으면 작은 일이 크게 되리라. 명심보감 계성(戒性)편에 나온다.

박병권체육부장 bkpar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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